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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연애학개론

[연애학개론] 바둑과 연애(1) - 응수타진과 봉위수기

[연애학개론] 바둑과 연애(1) - 응수타진과 봉위수기  


요즘 윤태호님의 웹툰 <미생>을 즐겨 읽고 있습니다. 아직 반 정도 밖에 읽지 못했습니다만 상당히 재밌고 흥미진진하더군요. 사실 저는 바둑에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이 웹툰에 등장하는 바둑 용어들과 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접하다보니 이러한 내용들을 연애에 접목시켜볼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웹툰을 통해 알게된 바둑 용어들을 바탕으로 <바둑과 연애>라는 제목의 글을 몇 편 써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응수타진(應手打診)과 봉위수기(逢危須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1. 응수타진(應手打診) -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연애 초기 우리가 항상 궁금해 하는 것은 상대방의 속마음이지만, 섣부른 '고백'만으로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더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큰맘 먹고 용기 있게 덤벼든 고백에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글쎄요.."라는 애매모호한 반응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죠. 사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답변을 한 상대방을 욕할 일은 아닙니다. 연애 초기의 사람 마음이란 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보니 오히려 본인도 자신의 속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거죠. 어찌됐든 이렇게 될 경우 자연스레 프레임 전쟁은 시작됩니다. 고니가 그랬죠.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그러니 확실하지 않으면 섣불리 고백하지 마시고 응수타진으로 대응하세요. 

바둑에서의 응수타진이란 '다음 수를 착점 하기 전 방향을 잡기 위해 한수를 가볍게 던져서 상대방의 동향을 살피거나 반응을 떠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권투로 치면 일종의 잽과 같은 것이고 스타로 치자면 일종의 '저글링 던지기'와 비슷하달까요. 마찬가지로 연애에서의 대표적인 응수타진에는 '데이트 신청'이 있습니다. 질게에 올라오는 많은 연애 질문 글들을 살펴보면 본격적인 데이트 신청은 하지 않은 채,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이런 저런 태도와 정황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글들이 가끔 보입니다. 이른바, 응수타진도 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 혹은 응수타진도 하지 않은 채 다음번 착수 지점을 고민하는 식이랄까요. 이러한 분들께 제가 드리고 싶은 공통적인 요구사항은 이렇습니다. 
"거절당해도 좋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데이트 신청부터 합시다."

그녀의 진심이 궁금하다고 해서 곧바로 섣불리 고백할 필요가 없듯 반대로 아무런 액션 없이 혼자 발만 동동 구르며 주변에 자문만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스런 데이트 신청을 통한 나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만으로도 얼마든지 상대방의 의중은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1-2.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 


<미생> 19화에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묘수 혹은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

사실 데이트 신청의 핵심은 상대방의 승낙부담을 덜어주는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모든 데이트 신청이 묘수 혹은 꼼수 등의 이른바 변화구로만 채워지는 경향이 많죠. 즉, 나의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구실만을 내세우며 만남을 제안하는 거죠. 저는 이러한 변화구를 (긍정적인 의미의) 묘수 혹은 (부정적인 의미의) 꼼수로 봅니다. 결국 이러한 변화구가 좋다 나쁘다라는 차원을 떠나서 핵심은, 내가 변화구를 던지면 상대방도 변화구로 응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말에 우리 만날래?" 가 직구성에 가깝다면 
"주말에 뭐해?"는 변화구성에 가깝죠.

우리가 직구를 던지면 상대방 리액션은 직구와 변화구 확률이 7:3 정도로 섞이지만 우리가 변화구만을 던지면 상대방은 100%로 변화구로 응수합니다. 마치 이런 식이죠.

영원 : "주말에 뭐해? 우리 같이 호빗 보러 갈래? 엄청 재밌겠던데~!" (데이트의 목적을 만남에 두지 않고 영화에 방점을 찍은 직구성 변화구입니다.) 
그녀 : "아~ 그 영화 이미 본 영화라서요.^^;" (변화구식 거절이죠.)
영원 : "아 그래? 그럼 레미제라블은?" (다시 또 변화구를 던집니다.)
그녀 : "에구.. 그것도 봤어요.^^; 죄송해요~" (다시 또 변화구로 대응하죠.)
영원 : "아, 글쿠나.. 할수 없네, 그럼 담에 보자~" (GG..)

이러한 변화구의 장점이라면 커다란 내상과 멘붕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지만, 그 반대로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나의 묘수 혹은 꼼수를 상대방 또한 묘수나 꼼수로 되받아칠 확률이 높죠. 만약 저라면, 이러한 변화구에 맞서 중간에 직구를 살짝 끼워넣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영원 : "주말에 뭐해? 우리 같이 호빗 보러 갈래? 엄청 재밌겠던데~!"
그녀 : "아~ 그 영화 이미 본 영화라서요.^^;"
영원 : "그래? 그럼 영화는 담에 보는 걸로 하고 커피나 한잔 하자.^^" 

이 경우, "커피를 못 마신다."는 변화구성 마구-_-로 되받아치는 경우만 제외한다면 상대방의 답변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대체로 정직하게 돌아옵니다. 물론 이러한 직구가 무조건 데이트 승낙률을 높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거절당할 데이트는 거절당하죠. 하지만 이렇듯 변화구로 시작해서 직구로 마무리하는 경우, 데이트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상대방의 묘수 혹은 꼼수는 정수로 받습니다.






2-1. 봉위수기(逢危須棄) - 위기에 처한 경우 불필요한 것을 버려라 


<미생> 20화에 봉위수기(逢危須棄)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위기에 처한 경우 불필요한 것을 마땅히 버릴 줄 알아야한다'는 의미이죠. 더불어 16화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외통이라면 말을 살찌워선 안 된다. 버려야 한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여러 가지 위기 봉착합니다. 연애 초기에는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하며 멘붕을 겪기도 하고 연애 중반에는 애인 몰래 나이트나 클럽을 갔다가 들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또 뜨겁던 연애 감정이 점점 식으며 종래에는 차갑게 이별을 통보받기도 하죠. 이렇듯 연애의 모든 시기엔 각 시기마다 나름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들은 불필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포기하고 버림으로서 극복해나갈 필요가 있죠. 

우선 연애 초기 세 번 이상의 삼고초려를 통한 꾸준한 데이트 신청이 지속적으로 거절당했다면, 데이트 자체를 과감히 포기하고 한타이밍 쉬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상대방)을 포기할 순 없으니 지금 이 순간 가장 불필요한 것(불발된 만남)을 버리고 차후를 노리는 것이죠. 눈치없이 계속해서 데이트 신청에만 집착했다가는 씁쓸한 꼴을 면하기 힘듭니다. 또한 연애 도중 다른 이성에게 한눈을 팔다가 들키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쓸데없이 변명에 급급하거나 도리어 잘못이 없다는 듯 화를 내는 뻔뻔한 태도는 위기에 불을 지르는 방아쇠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결국 크건 작건 나의 허물과 잘못이 노출되는 순간, 그 허물과 잘못을 우선적으로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이 관계의 지속을 위해선 필요하죠. 어차피 그 상황에서 나의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체면까지 모두 지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상황을 타개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것(쓸데없는 자존심 등)은 우선적으로 포기할 줄 알아야합니다. 모든 것을 지키려하다가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2-2. 환격(還擊) -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봉위수기(逢危須棄)와 약간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비슷한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볼만한 바둑용어가 바로 환격(還擊)입니다. 미생 4화에도 등장하는 이 용어는 '상대방의 자충수를 유도하여 내 한점을 희생하는 대신에 상대방의 돌을 두점 이상 되따내는 방법'입니다. 즉 상대방이 내가 유도한 그 자리에 돌을 놓는 순간 내 돌 한점은 헌납되지만 뒤이은 나의 착수로 자연스레 상대방의 돌을 두점 이상 되따내는 수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른바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고육지계'와도 일맥상통하는 용어로서 이러한 환격을 연애에 접목시킨다면 이렇게 표현될 수 있겠네요.

[돈을 쓰고 주도권을 취한다.]

예전 글 <데이트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에서도 언급한 내용입니다만, 데이트에서 비용 부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데이트의 주도권과 즐거움을 얻는 것은 보다 더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제이죠. 사실 돈을 쓰지 않고 주도권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이는 사실상 도둑놈 심보-_-나 다름이 없죠. 결국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보다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고, 소를 탐하다가 대를 그르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결국 남은 것은, '돈을 쓰고 관계의 주도권을 취할 것이냐', '돈을 쓰지 않는 대신 관계의 주도권을 넘겨줄 것이냐'의 양갈래길인데 저라면 무조건 전자를 추천합니다. 어차피 상대방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순간 데이트 비용에 대한 출혈은 어느 정도 감수한 입장이라고 봤을 때 결국 중요한 것은 '판 자체를 얼마나 리드하고 즐길 줄 아는 태도를 보일 것인가'입니다. 그러니 이왕 쓰는 돈, 시원하게 쓰는 대신 스스로 데이트를 즐기고 관계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옵시다. 제발 돈은 돈대로 쓰고 주도권마저 상대방에게 헌납하며 데이트마저 즐기지 못하는 안습의 우를 범하진 말자구요. 우리에겐 우리의 데이트를 즐길 권리가 충분히 있습니다. 데이트는 선물이 아닌, 일종의 동행이니까요.






3.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연애는 있다 


<미생> 20화에서 박대리에게 열심히 뒤에서 조언을 해주던 주인공이, 조언을 넘어서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는 박대리를 보며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은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이런 저런 연애 관련 글도 읽고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가 짜야하는 판이고, 내가 임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결국 지금 읽고 계시는 이런 흔하디흔한 연애 칼럼도 살짝 거들 뿐이죠. 처음엔 남들의 기보를 따라하는 흉내내기와 모방에 그칠지라도 그 흉내내기와 모방을 통해 점차 깨지고 부수어지며 자신만의 바둑을 완성해가는 것처럼, 제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또한 제 글에서 언급하는 소소한 차원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연애를 완성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쓰는 저에게도, 또 읽고 계신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연애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럼 저는 <미생> 나머지 편을 마저 탐독한 뒤 [바둑과 연애] 2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