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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개팅

소개팅 전선에 나서는 남성 동지들께, 이것만은. 3-5

24. 설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있겠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없을 일은 아닌 것이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는 그런 일도 있다. 어떤 일이냐고? 그녀가 우리에게 들이대는 일.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고 싶을 정도의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도 최소한 주1회 방송하는걸 보면, 그만큼 신기한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세상에는 그런 일이 있긴 있다. 나조차도 가끔 겪는다. 그때마다 놀란다. 혼자서 생각한다. '아니, 대체 왜?' -_-; 하지만 있더라. 어떤 일? 그녀가 물었다. '나랑 사귈래?' 난 별로 그럴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을 잘해야 진짜 연애를 잘하는 것이라고 단언할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아직 멀었다(먼산). 


① 만나서 거절하는게 원칙이다 

만약 우리가 정식으로 교제를 제의받았다고 하자. 그녀 나름대로는 한껏 치장하고, 길일을 잡아(…) 목욕재계하고, 최소한 '고백하기 좋은 까페' 정도는 검색하고 와서 고백했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꽤 대접받은 것이다. 정중하게 제의받았으면, 정중하게 거절하는게 좋다. 전화, 좀 무례할 수 있다. 메신저? 메신저로 불러내지 않는게 좋다. 문자? 이런 것들이 문제인건 이미 고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누히 이야기 했으니 생략하겠다. 정중히 거절한다는 말의 뜻은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② 냉정하게 거절하지 않는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희망고문' 이라는 말을 참 싫어하는데, 물론 어정쩡하게 굴거나, 은근히 여지를 남겨두는 짓은 나쁘다. 하지만 '희망고문' 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구애를 거절할 때 지나치게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를 좋아해주는 여자다. 취향이 정말 이상한게 아니면, 마음이 천사, 선녀, 비단결, 나이팅게일 또 아무튼 온갖 좋은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좋을 정도로 자기 희생 정신이 충만한 것이다. 그런 여자에게 매몰차게 구는게 더 나쁘다. 

냉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거절 당하는 순간에 그녀는 상처받는다. 자존심도 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마음 다치지 않게 배려하는게 옳다. 좋게 좋게 거절하자. 이에 대해서는 25-③ 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25. 그만 만나고 싶다면… 

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그녀에게 애프터 신청을 했다고 치자. 한번, 두번 만나봤는데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럼 어쩔텐가?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짓은… 

잠수 탄다, 

는 것이다. 

세상에는 절교 선언이라는 것도 있다지만, 인간 관계에서 관계 맺기, 끊기, 승낙, 거절 등의 시작과 끝이 이토록 명확한 관계는 남녀 사이 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인간 관계보다 남녀 사이는 더욱 빈번하고, 강렬한 상처를 서로에게 입힌다. 사람은 왜 그 관계 속에서 상처받으면서도, 또 다른 관계를 맺고, 또 상처받는걸까,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소설가 양반들에게 맡겨두고, 

왜 사람들은 명확히 거절을 하지 못하고, 잠수를 타는 등의 방식으로 완곡하게, 아주 많이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표하는가. 그건 물론 '거절' 이라는건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이 있다. 아주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인데, 종종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 가장 흔히 상상해볼 수 있는 케이스가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어장관리랄까, 이런걸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 하다. 어장관리라는걸 인정한다치고, 거절을 잘 못하기 때문에 어장관리를 당했다면 그건 어장관리 업주를 비난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탓하는게 옳다. 왜냐하면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인게 아니라 겁쟁이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리한 부탁 등을 딱 잘라 거절하면 사람들이 흔히 '상처 받았어' 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 상처를 줬다거나, 받았다는 일은 완전히 상호적인 교류에 가깝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처를 주거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옛 선인들은 말씀하셨다. 때린 놈 발 뻗고 못 잔다고. 더군다나 남녀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맞은 놈도, 때린 놈도 둘다 발 뻗고 못 자는게 남녀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 받음이고, 우리는 모두 상처를 주면서 상처를 받으며, 상처를 받으며 상처를 준다. 

문제는 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언젠가는 때려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여자와 계속 만나면 그게 오히려 내가 조금씩 맞는 일이고, 잔매에 장사없다고 그게 더 골병 드는 일이다. 그러니 때려야 한다. 하지만 발 뻗고 자고도 싶으니, 

혼자 지쳐 쓰러지라고 도망치는 것이다.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마음 약한 사람에 가까울 수도 있다. 상처 입은 표정을 보고 싶지 않은 것, 그 난감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감내하고 싶지 않은 것, 인간적으로는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겁한 것인 것도 사실이다. 잠수 타는건 그런 일이다. 



① 만나서 이야기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견이 갈릴 수도 있겠다. 가정을 하자. 소개팅 후 애프터를 했고, 받아들여졌다. 두세번 정도 영화와 식사를 하는 데이트를 했다. 몇번 데이트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우리랑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어떻게 이 마음을 전달할 것인가? 

만날 필요까지는 없다. 만약 그녀가 당신에게 우리 정식으로 교제를 하자, 고 유선이나 넷 상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제의를 했다면 당신도 오프라인에서 거절을 하는게 좋다. 그렇지만 그저 몇번 데이트를 했고, 그 데이트를 또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럼 그냥 전화로 이야기해도 괜찮다. 문자로 이야기하진 말자. 난 메신저도 썩 나쁠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본적으로 전화가 좋을 듯 하다. 


② 내가 걔한테 얘기 들었는데, 니가 여자로 안 보인대. 

여자들이 자주 쓰는 방식이긴 하다. 나는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애프터를 한번 정도 했다고 했을 때는 몰라도, 데이트를 두세번 진행하고 나서도 주선자를 찾는건 좀 비겁해 보인다. 사실 주선자의 역할은 양자 소개에서 이미 끝난 것이다. 애프터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주선자를 개입시키는건 나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에 대해서 옹호할 장점이 전혀 없는건 아닌데, 직접 상대에게 거절을 듣는 것보다 자존심이 덜 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보다 온건한 방식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직접 이야기 듣지 못하는 것에 기분 나빠할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주선자를 통해서 거절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자신이 상처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을 모면함으로써 자신이 입을 상처까지 상대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라는데서, 무작정 잠수 타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의 행동이다. 분명 직접 상대에게 거절의 멘트를 날리는 것보다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행동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화법의 문제다. 


③ 솔직할 필요는 없다

중언부언한 설명은 빼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다. 지나치게 단호하고, 딱 잘라 이야기할 필요 없다. 그녀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아야 한다. 그녀와 왜 더 데이트를 하고 싶지 않은지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프렌즈>에서 챈들러는 여러가지 이유로 여자를 딱지 놓는데, 그게 시트콤적 과장은 별로 아니다.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게 싫을 수도 있고, 눈화장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더 만나기 싫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게 짜증날 수도 있고, 의외로 영화 보는 취향이 천박하거나 책을 전혀 읽지 않는게 싫을 수도 있다. 가슴이 작아서 싫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는 물론 솔직하게 말할 사람이 없겠지만, 문제는 거절의 스킬이다. 보통 여자보다 남자가 말을 잘 못 한다는게 일반적인 통설이고, 남녀 사이의 대화는 더욱 그러한데 보통 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자들보다 상대의 아주 세세한 자존심을 고려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하다보면, '네가 내 취향이 아니다' 라는 간단한 멘트만으로도 마치 여자가 울고불고 스토커마냥 쫓아다녀서 이젠 좀 그만 좀 하라는 식이 되거나 여자가 남자친구 판검사 만들려고 떡 팔아가며 뒷바라지해 순정을 다 바쳤는데, 이제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돌아서려는 미워도 다시 한번 식으로 상황을 만들어버리기 쉽다. 좀 과장한 것 같지만, 실제로 거절 당했을 때 그녀는 종종 그런 식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건 어디까지나 화법이 문제다. 

그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끔 최대한 배려할 필요가 있다. 최대한 부드럽게 말할 필요가 있다. 가식적인 멘트라도 날릴 필요가 있다. 말로 천냥빚 갚는다고 했다. 같은 말이면 상냥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많이 생각해봤다. 당신이 굉장히 좋은 사람 같고, 나도 내가 실수하는게 아닌지 좀 걱정도 된다. 솔직히 처음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좀 자신이 안 생긴다. 지금은 그냥 좋은 감정이고 그렇지만,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그만 만나는게 좋을 것 같다.' 

정도면 무난하다. 이런 말 못하겠으면, 그냥 '내가 지금 연애할 상황이 아니에요' 라고 하던가. 다만 친구로라도 남고 싶다거나 좋은 친구가 되자는 말은 안 하는게 좋다.친구 만들려고 소개팅하니? 딴 친구한테나 더 신경 쓰셈. 이 상황에서 친구로는 지내고 싶어서, 뭔가 끈을 남겨두려고 하는 짓은 대개는 어영부영, 혹은 우유부단, 아니면 오해의 단초를 남기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소개팅한 상대와 어찌 어찌 친구로 남은 사람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친구로 남고 싶다고 뭔가를 하는 일은 후지다. 그냥 남남이 되는게 낫다. '친구로 지내자' 따위의 말은 하지 말자. 구차할 뿐더러, 역시 끝까지 나쁜 남자가 안 되고 싶다는 일종의 우회책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역시 공정하진 않다. '여자로는 안 보이지만, 친구라면 해주지' 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냥 간단하게 '우리 남남이 됩시다' 고 말하는게 낫다. 




26. 시작의 끝, 끝의 시작… 

소개팅 만나러 가기 전에 할 일, 만나서 조심해야 하는 일, 첫 만남 이후 데이트와 구애, 고백과 거절까지 보통 일어나는 일은 다 다룬 듯 하다. 일이 잘 성사되었다면, 연애를 시작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은 무슨 필승법이라기보다는 나쁜 남자가 되지 않는 법, 혹은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는 법 정도에 불과하다. 이 긴 글을 써놓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링크 링크 따라 클릭했는데! 이제와서 필승법이 아니라니! 죄송하다. 하지만 연애에 필승법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나쁜 남자가 되지 않는 법 정도는 있을 법하다. 나쁜 남자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남자가 된다면, 기회가 더 많이 생기는 법이고 더 많은 기회가 있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연애에 관심은 많지만,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결국 기회를 많이 못 만들기 때문이다. 안 예쁘고, 안 잘생겼고, 돈이 별로 없고의 문제와는 크게 상관 없다. 자신이 그 기회들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늘 가꾸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를 자문해볼 일이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분들께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이 글은 연애의 시작 단계에서 끝나지만, 진짜 중요한 승부는 앞으로의 일상에서 이루어진다. 이제 그 설레이고, 신나고, 어쩌면 지리하고, 평범한 일상에서의 승부가 매일매일 펼쳐지게 될텐데…, 글쎄. 그 만남과 헤어짐은 언젠가 다른 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조금씩 한마디씩 건네보고 싶다. 이 글은 여기에서 끝난다.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를 나는 계속 할테고, 그 이야기들로 인해 이 글은 끝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난 항상 이런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상담하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나,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나, 온라인 상에서 불특정 다수에게나. 우리 좀 더 좋은 연애를 합시다, 우리 좀 더 즐거운 연애를. 좀 더 비겁해지지 않는 그런 연애를 합시다, 하는 이야기를.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유행가의 가사는 꽤 삶의 지혜의 단편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허투로 듣지 말 일이다. 악전고투 끝에 연애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유명한 유행가의 한구절 남긴다. 

…처음에 사랑할 때 그 이는 씩씩한 남자였죠. 저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준다, 미더운 약속을 하더니 
이제는 달라졌어 그 이는. 나보고 다해달래. 아이가 되어버린 내 사랑, 당신 정말 미워 죽겠네… 

문주란 -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느끼는 바가 많으실 분들 있으리라 믿는다 -_-; 



* 덧붙이는 말 

이 <소개팅 전선에 나서는 남성동지들께, 이것만은> 시리즈가 처음 올라온 날짜는 4월 29일 입니다. 오늘이 7월 11일이니, 모두 다 쓰는데 석달이 조금 덜 걸린 셈입니다. 총 열 편의 글을 썼고, a4 용지로 따지면 대략 70 페이지 정도 됩니다. 200자 원고지로는 530여장이 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길게 쓸 생각도 없었고, 두세편 정도에서 간단히 쓸 생각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주셨고, 또 덧글도 많이 달아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단순한 저는 그게 좋아서 글을 점점 길게 늘이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저도 조금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보다 끝으로 갈수록 재미없거나, 좀 대충 쓰는 듯한 느낌을 받으신 분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안 좋은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마초라는 말도 들었고, 여자에게 굽신굽신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둘이 어떻게 동시에 성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인할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제 글에서 제가 보이고 있는 관점은 아마도 가부장적 기사도에 가까울 겁니다. 정치적으로 공정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더군다나 제 글이 일반적인 이성 간의 소개팅 상황을 가정하고 남자들을 향해 발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에게 '이러지 말라', 는 식의 말을 하는 글이니 아마 '남자다워야 한다'는 불공정한 사회적 억압에 시달려온 남자 분들께는 다소 불편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여자 분들께도 '여자는 이다지도 보호받아야만 하는 한떨기 꽃' 같은 주장을 하려고 쓴 글은 아니었으나 혹시나마 그런 뉘앙스를 느끼시지는 않았나 하는 기우를 해 봅니다. 

정치적으로는 어떤 연애가 공정한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데이트나 연애를 가정할 때 <우리 결혼했어요> 의 알렉스와 같은 남자가 가장 좋은 남자라고는 저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루하지 않은 이벤트, 시의적절하게 날려주는 핑크빛 사랑 고백, 언제나 싱그러운 미소에대한 강요는 연애를 생활이 아니라 청춘 시트콤으로 박제시켜 버립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뭔가를 해주었다는것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고, 여자는 애교 부리고, 예쁘게 웃고, 가끔 떼를 쓰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의 무한반복이 연애이고, 그 과정의 피곤함이 누적되어 벌어지는 파국이 이별은 아닐 겁니다. 제가 이리 강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면에서 제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시리즈 글들의 어조는 조금은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고백했다시피 연애에 있어서 저 자신이 취하고 있는 스탠스가 그다지 성평등적이진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남성 동지들은 가슴 아픈 지적 하나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뭐냐면 남자들이 지나치게 데이트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이 글에 대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연애 안 하고 말겠다' 거나, '이렇게까지 해서 연애 해야 하나?', 혹은 '여자들은 아무 것도 안 하냐?' 였습니다. 다른 나라의 남자야 제가 지인으로 삼고 있는 자가 없으니,비교 대상으로 삼지도 않겠고 한국 남자라고 딱 갖다 붙이지도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저를 포함하여 남자 반 중학교, 남고, 대학,군대를 거쳐 지금까지 알고 지낸 지인, 보고 들은 연애담들, 그리고 이 글의 주제인 소개팅(저는 데이트라고 말하고싶습니다만)에서 많은 남자들이 딱히 준비라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준비라고 했을 때, 또 압박감을 느끼시나요? 저는 까페 하나 빌려 무슨 랩을 해주라거나, 헤어질 때도 스튜디오 하나 빌려서 멋들어진 노래 하나 쯤은 불러주는 이벤트 준비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 많은 시간, 큰 노력, 비싼 돈을 들여서 뭘 하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한 차례도 없습니다. 저는 대부분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고, 그 어투나 표현이 과장되거나 극단적일 때는 있었어도 내용상으로는 상식적인 기조를 대부분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아무 것도 안 하냐?' 라는 말들도 그렇습니다. 저는 첫 데이트에 한정해서 최소한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할까, 정도를 사전에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깨끗히 씻고, 깔끔하게 입고, 가능하면 치장하여 데이트에 임하라는걸 굳이 다시 얘기한건 여자가 맨 얼굴로 나오면 실망할게 틀림없는 남자들에게 '굳이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킨 - 로션 - 에센스 - 자외선 차단제 - 메이크업 베이스 - 파운데이션 - 파우더 - 눈썹 그리기 - 아이라이너 - 립라이너 - 립글로즈는 발라줘야(한두개 빠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크림, 세럼, 아이쉐도우, 트윈케익 등등이 더 들어갈 수도-_-;)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면서도 스킨(애프터 쉐이브) - 로션 - 자외선 차단제의 단계조차 귀찮아서 올인원 제품을 추구하는 남자들이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될 일일 겁니다. 여름인데 저렇게 다 바르는 여자가 어딨냐고요? 그럼 여름이라 제모 하십니까? 

가끔은 '이 정도는 다 알고 있는거다' 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상식적이라니까요? 사실은 대단할게 없는 내용이고, 뻔한 내용을 이렇게 길게 늘여썼다는데서 저는 오히려 민망함을 느낍니다. 연애를 많이 해보신 분이나, 오래 연애를 해보신 남자 분들에겐 딱히 특별할게 없는 내용 입니다. 알면서도 못하는게 있을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취하는 행동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대단히 새로운 얘기들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글들에 달린 덧글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전에 제가 보고 들어온 수많은 연애담들을 통해서 어느 누군가는 너무 뻔히 잘 알고 있는 것들조차 정말 몰라서 못하는 남자들도 있다는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상식이 누구에게나 상식이 아니라는거지요. 사실은 그게 제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고, 뻔한 얘기들을 재삼재사 반복하면서 결국 완결까지 낼 수 있었던 이유 입니다. 

소개팅을 할 때, 처음 보는 여자와 데이트를 할 때 남자들은 물론 압박감을 갖습니다. 그 압박감은 대개 이 정도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나서 뭐하나? 뭐 먹지? 나 말 잘 못하는데 무슨 얘기할까?' 저는 거기에 대한 제 나름의 대답을 드렸습니다. 

연애는 어렵습니다. 상식이라고 말은 했지만, 그 상식이 복잡하고, 다양한 연애의 상황에서 언제나 선명해 보이는 건 아닙니다. 제가 드린 나름의 대답대로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다거나 하는건 아닐 겁니다. 제 글은 '소개팅에서의 필승법'이라는 말조차 못 붙이겠습니다. 그냥 저는 이 정도로 행동하면, 최소한 나쁜 기억은 남기지 않을거다, 연애는 할 수 없어도 그걸 거절하는 여자 분도 나름 참 아쉬워 하는 남자가 될 수는 있겠다,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토록 기다란 글을 써놓고 이제와서 필승법도 아니고, 이대로 다 해도 연애는 못할 수도 있다니 너무 허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을 남기는 남자, 생각하면 아, 참 좋은 사람이었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남자가 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긴 시리즈에서 저는 수많은 연애의 모습들을 소개했습니다. 글의 특성상, 그리고 재미를 위해서 조금 과장되었거나, 극단적인 경우만 소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 많지 않나요? 어떻게 저런 짓을 하나, 싶은 소위 '진상'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런 '진상'들도 있다고 소개한 그 '진상짓'을 저 또한 수없이 많이 저질렀습니다. 아마 제가 글을 쓰면서 거론한 '하지 말라고 언급한 그 많은 것들의 대부분은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민망하게도 '귤님 여자친구 분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이런 글을 쓰는 분은 어떤 연애를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이런 덧글도 제법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어느 여자들에게는 진상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사실 가장 괴로웠던 점도 그것이었고, 이 글을 완결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건 바쁘거나,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에 의욕이 안 생겼던 탓도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글을 완결시킨건, 처음에는 정말 소개팅이나 첫 데이트 때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다가는 제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더 강해졌습니다. 저는 결코 좋은 남자가 아니지만, 좋은 남자가 되고 싶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연애관에 대한 서술이 점점 많아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언령적 속박을 저 스스로 거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어쩌면 이 글은 저에게는 일종의 참회록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 글을 씀으로 해서 어쨌든 좋은 일도 많이 생겼습니다. 블로그에 방문자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글루스에서 무슨 연애 전문가 상이라는 것도 주셨습니다. 이글루스 파티에 갔더니, 절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민망하기도 했지만,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 여러 좋은 일들이 생겼고,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어쨌든간에… 무슨 대단찮은 글 몇개 써놓고, 아카데미라도 수상하는 것마냥 폼 잡는다 하실까봐 얼른 접겠습니다. 민망하니 이 글에는 답덧글 달지 않겠습니다.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연애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