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남자들은 의외로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쑥쓰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에,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마법의 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기요', '그쪽', '근데요', '있잖아요', 아참'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이름을 부르는 마법에 대해서는
불러줄래, my name
참조하여 시전하자. 마나 게이지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당신이라도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다.
단, 이름을 부르는 마법에 반말을 섞는다면 시전자에게 심각한 마법적 부작용이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주의하자.
15. 애기야 저나 바다~
핸드폰은 그냥 꺼놓자. 아니면 최소한 무음, 그것도 힘들면 진동으로 바꿔놓자. 이 글을 읽는 20대 초반 분들은 기억이 안 나실지도 모르겠는데, 한석규가 광고하던 초기 SKT 광고에 '소중한 사람을 만나실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라는 카피가 있었다.
그 말 그대로다. 어차피 전화 안 오지 않나. 솔직히 '오빠 내 몸매 어때요' 이런 문자 밖에 안 오지 않나. 시계가 없다고? 어디에든 들어가자마자 핸드폰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시시때때로 확인하는 것만큼 '이 자리가 지루해요' 라는 뜻으로 느껴지는 제스추어도 흔치 않다. 시계가 없으면 가방 속에 넣어두고 소개팅 상대가 화장실에 가거나 했을 때 가끔 확인하면 된다.
만약 업무상 전화가 올 일이 있다거나, 꼭 받아야만 하는 연락이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시간을 확인하는 일은 삼가자. 그리고 벨소리는 꼭 무음이나 진동으로 바꾸어두자. 상대를 앞에 앉혀두고 문자를 보내는 일은, 그것도 그게 잡담이라면 절대로 삼가할 일이다. 전화도 받지 않는게 좋다. 만약 문자를 확인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아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양해를 구하자. 그리고 전화를 받을 때는 잠시 나가서 받는게 좋겠다. 그때는 당신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상대방의 양해 하에 일종의 허락된 실례를 범하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말자.
그리고 시계 정도는 정말 질러도 된다. 남자에게 시계는 중요한 악세서리고, 휘황한 금목걸이보다, 비싸진 않아도 예쁜 시계 하나가 더 당신의 센스에 신뢰감을 얹어준다. 베이비쥐샥 이런건…음; 뭐, 취향대로. ㅠ.ㅠ
16. 선물 해도 되나요?
아놔. 진짜 웃긴 소개팅 얘기 하나 해주겠다. 이건 나도 전해 들은건데, K 산 밑에 있는 서울 유수의 S 대학의 D 군 - 대학에 입학하고 부푼 꿈을 꾸었으나, '엄마밖에몰랐어요' 19년을 살았는데 난데없이 여자친구가 생길리 만무. 그의 '엄마밖에몰랐어요' 인생은 25년으로 늘어난다. 군대에서 여자친구한테 편지 오는 후임들을 괴롭히며 외로움을 달래온 D 군, 전역하자마자 단단히 결심하고 각 잡고 D 군은 친구들을 모조리 닦달해 소개팅 건수를 잡았다. 미리 사진도 확인하고, 김치국도 다 끓지도 않은걸 완샷한 D 군…
…
…소개팅하러 나오는데 꽃다발, 그것도 장미로! 그것도 상대 나이 수에 맞춰서! 가득 안고 나타났단다. 한 손에는 선물상자를 하나 들고. 그 선물상자 안에는 오르골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참 여자가 좋아죽었겠다.
처음 만나는데 제발 선물 같은거 할 생각 하지 좀 말자. 여자가 선물이면 껌뻑 죽는다? 여자는 꽃을 다 좋아한다?
검색어 놀이로 알아보는 연애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한다면…
…아주 옛날에 쓴 글들이긴 하지만, 참조하자.
소개팅에서 선물을 죽어도 해야겠다, 나는 선물 안 하면 죽는다, 차라리 죽겠다고 하시는 분은
…제발 분위기 화기애애하게 만들어놓고서나 하자. 집에 갈 때나 가판에서 예쁜 초나 향 같은거, 머리핀 같은거나 사주시길. 그것도 상대가 반색하면서 가판에 관심을 보일 때 얘기다. 그리고 상대가 괜찮다고 웃으면 그냥 그러시냐고 같이 웃어주고 말자. 악세서리도 오바다. 둘 사이가 벌써 뭐라고, 처음 만났는데 아무리 싼 거더라도 귀걸이나 목걸이를 덥썩덥썩 받겠나. 괜히 사준다고 해놓고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나중에 뒷말 듣는다.
… 비 오는데 우산 준비 못한 그녀에게 편의점에서 우산 사주는 정도는 괜찮겠다. 곧 장마이기도 하니까는.
17.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문제 하나를 내겠다.
만나고 있는 장소가 각자의 집에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시내의 유흥가라고 가정하자. 오늘은 토요일이고, 오후 6시 쯤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은 후에 간단히 맥주 한잔을 했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를 조금 넘겼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편, 다소 어색한 순간도 없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괜찮은 만남이었던 것 같고, 좋은 첫인상을 남긴 듯 하다. 연락처는 진즉에 받아두었다. 당신은 이만 일어나자는 말을 언제 해야 할까?
① 1시간 후에 ② 2시간 후에 ③ 아잉, 집에 왜 가잉 ④ 여자 쪽에서 먼저 일어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린다 ⑤ 지금
뭐가 답이라고 생각하셨는가. 답은 5번, 지금이다.
지금부터 왜 답이 5번이 되는가를 얘기해본다면,
분위기가 분명 나쁘지 않았다면, 남녀의 첫만남이라면 모름지기 귓가에 맑디 맑은 종소리가 나고, 꽃비가 내리는 휠링~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신 여자 분을 제외하면 다음 만남이 기약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첫만남은 조금 아쉽다 싶을 때 매듭 짓는게 좋다. 소개팅은 수능 시험이 아니다. 12년 동안 갈고 닦은 모든 학업 지식을 단 한 번에 펼쳐보이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애에 많은 경험이 없는 남자들의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단 한 방에 쇼부를 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 만남이 기약되어 있다면, 좋은 인상을 남긴 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다음 만남을 위해서도 훨씬 좋은 일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분명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10시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1시간 걸리는 거리니, 집에 11시에 도착한다? 10시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산책하는 기분으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지하철역, 혹은 버스 정류장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10시 2~30분은 되기 마련이고 여차저차 하다보면 여자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11시 30분~40분 남짓이 된다는 이야기다.
밤 12시 이전에는 집에 들여보내는게 모양새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머어머, 여자는 밤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 뿌우~
이런 얘기를 하자는게 아니다. 여자의 집이 엄한지, 혹시 통금 시간이 있는지는 물론 미리 물어보고 그 시간에 맞추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요즘도 그런 집이 있냐면은 물론 있고, 나이 어린 여대생일수록 그렇다. 주말이라면 다음날에 대한 부담은 덜하겠다(평일이라면 물론 이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집에 들어가는 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분위기가 좋았어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여러 시간 같이 있으면 조금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법이다. 감정적으로도 피곤한데, 소개팅 하러 왔으면 아마 어느 정도는 화장도 했을 것이다. 화장을 했다는 이야기는 눈화장을 했다는 이야기고, 평소에 안경을 쓰는 사람은 렌즈를 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화장하고 렌즈 낀 채 긴장한 채로 술 마시면… 눈 진짜 뻑뻑하고 아프기까지 한다. 눈이 아프면 두배로 피곤하다. 게다가 힐도 신었을테니, 발도 아플거다. 힐 신고 조금만 걸어도 밤이 되면 발이 붓는다. 특히 한국 여자는 '저주받은 하체'이거나, 손발이 찬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은 발이 잘 붓는다. 부은 발로 힐 신고 있으면 더 아프다. 그래서 아주 피곤하다.
또한 속옷에도 은근히 힘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에게 보일려고 힘을 준게 아니다는걸 명심하자. 상식이 있는 여자라 소개팅에 나올 때 그래도 꽤 차려 입었다고 가정하면, 예쁜 옷을 차려 입었는데 그 안에 보푸라기 가득한 브래지어를 입고 있을 여자는 별로 많지 않다. 보정 속옷을 입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보정 속옷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이 모든게 무슨 얘기냐면, 차려 입는건 피곤하다는 얘기다. 힘들면 짜증이 나게 되어 있다. 짜증이 나기 전에 집에 들여보내야 하는게 당연하다. 게다가 요즘 밤길 무섭다. 너무 늦기 전에 들여 보내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답은 5번이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분위기가 너무 미친듯이 좋아서 둘다 시계 보는걸 잊을 정도였다거나, 둘다 집이 코앞이라거나, 아니면 오늘따라 술이 너무 달아서 이 좋은 날 안 마셔주면 또 언제 또 마셔주겠냐고 둘이 의기투합했다면(이건 아무래도 연인 관계로 발전하긴 그른 것 같은데-_-;) 알아서 판단하시라. 변수는 많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는 것 때문에 여자가 혹시 난처한 지경에 빠지지 않을지, 피로하거나 한 모습을 보이진 않는지, 또 심지어는 집앞 지하철 역,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으슥하지는 않은지를 모두 생각하고 집에 들여보내는 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세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내가 이 카테고리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 채신 분?
중요한건 답이 5번이라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4번. 여자 쪽에서 먼저 일어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린다, 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라는 얘기는 작든, 크든 부담을 가질 수 있는 발언이다. 그 부담을 여자에게 떠맡기는건 남자로서 다소 비겁한 일일 수도 있다.
여태까지 당신이 밥 먹으러 갈 때나 술 마시러 갈 때 여자를 리드했는데 집에 갈 때는 여자 쪽에 결정을 맡기자는건 결국 당신의 우유부단함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처음부터 리드했으면, 그날은 깔끔하게 당신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좋다. 새내기 여학생들이 왜 말도 안 되는 복학생 오빠한테 낚이는가. 수많은 연애담에 주목해보자. 모임에서 리더쉽 있는 그를 처음 보고 반했어요, 라는 대목이 왜 심심치 않게 발견되지 않던가. 가슴에 손을 얹고 그동안 자신의 연애 실패 이유에 대해 복기할 일이다.
18. 집에 바래다 줘야 하나요?
주변에 연애 경험이 적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개인적인 리서치를 해본 적이 있다. 그 리서치의 결과는 놀라웠다. 여자랑 처음 만났을 때 남자가 가장 당황해하거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의 2위인가, 3위였던가(기억이 가물가물)가 집에 데려다 줘야 하는게 맞는지 판단이 안 선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에도 있더라. 집에 데려다 주는게 소개팅 매너인가염? 데려다주라는 답변도 많더라. 처음 만났는데 왜 이런걸 가지고 고민해…;
내가 이 긴 글 시리즈에서 누차 이야기하고 있는게 뭐냐면, 과유불급. 지나친건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소개팅에서 처음 만났는데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집에 데려다 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라고 말끝을 흐리는 분이 있을 줄 안다. 혹시 그날 분위기가 좋았다면, 집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자신의 신사다움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완전히 끝을 보고 싶다는 미련! 그놈의 미련! 솔직히 말해서 혹시 집앞에서 굿나잇 키스라도 바라는건 아닌지, 아니면 괜히 '라면 먹고 갈래요?' 라는 반응을 기대하는건 아닌지 가슴에 다시 한번 손을 얹어보자.
아무리 연애를 전제로 만나서 분위기가 좋았다 하더라도 그날로 사귀기로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집에 데려다주는건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게 할 여지가 있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났는데, 집에도 데려다주지 않았다고 그 남자 매너없다 비난할 여자는 없다. 또한 여자는 오히려 자기 집 근처의 지리가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을 뭘 믿고 집까지 가르쳐주겠나.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빠이빠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소한 배웅을 남자가 한다는 형식을 갖출 필요는 있다. 그것이 데이트의 기본이다. 그녀가 버스 타는 곳, 지하철 타는 승강장까지 바래다주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버스를 타는 것, 지하철을 타는 것까지 지켜본다.
여자가 택시를 탄다면, 차 문을 열어주고 기사 분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그 밖에 시간을 확인하자. 밤 12시가 넘는 시간이라면 차 번호판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두는게 좋겠다. 여자가 집에 밤 12시가 크게 넘지 않게 도착할 거라고 예상된다면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어보인다. 택시를 타는 이유가 많이 취해서라면, 시간에 상관없이 그 취한 정도에 따라서 동승하는 것도 고려해보자. 당신 책임이니까. 물론 어디서 쉬었다 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다. 데이트는 빠이빠이 하는 순간에 끝나는게 아니다. 그녀가 집에 안전하게 귀가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차 번호판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두는건 좋지만, 그걸 가지고 나중에 '나 이정도로 매너있음-_-v' 하고 생색낼 거리로는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진상이다. 나는 자기가 찍은 차 번호판 소개팅녀 핸드폰에 전송해주는 인간도 봤다. 대체 왜? -_-? 그녀가 집에 잘 도착했음을 알았을 때, 더 이상 필요없는 차 번호판 사진은 삭제하자.
어떤 사람들 중에는 헤어지고 나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차 타는걸 보고 휑하니 돌아서서 제 갈 길 가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연애를 하는 여자들에게 리서치를 해보면, 휑하니 돌아서 가버리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섭섭하다는 답변도 무시 못할 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지켜본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돌아보지 않아도 계속 지켜본다. 만약 여자가 뒤돌아본다면 당신이 계속 지켜보고 있는 모습에서 적잖이 좋은 인상이 남을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면 그 버스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하철이 출발하면 최소한 그녀가 탄 지하철 차량의 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다. 그게 데이트의 가장 최소한의 '안녕'이다.
또한 헤어지자마자 '오늘 즐거웠구요' 하는 문자를 기계적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그녀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했을만한 시간을 잘 계산해서 문자 하나 쯤은 남겨주자. '잘 들어가셨나요? 오늘 덕분에 재밌었어요. 또 연락 드릴께요.'정도면 깔끔하다. 이런 문자를 그냥 씹을 여자 별로 없다. '잘 도착했어요. 저도 오늘 덕분에 즐거웠어요' 정도의 무난한 답문이 올 것이다. '잘 들어가셨다니, 됐네요. 오늘 피곤하셨을텐데 편히 쉬세요' 정도의 답문이 오가면 잘 된 소개팅의 무난하고, 꽤 괜찮은 마무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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