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동할 때 주의해야 할 점
'나는 발렛 파킹이 가능하지 않은 곳에선 데이트 하지 않는다능!' 이런 분이 아니시라면, 어쨌거나 까페든 음식점이든, 어딜 가든 이동을 해야 할 것이다. 걸어서든, 지하철을 타고서든, 버스를 타고서든, 택시를 타고서든 말이다. 여기서는 술 마실 일정까지 계획된 소개팅을 상정하고 있으므로, 차를 가져갔을 상황은 일단 제외한다.
① 걸음걸이
걸을 때 걸음걸이 속도를 맞추는건 기본이지만, 다시 한번 여자의 걸음걸이는 생각 이상으로 남자의 걸음 걸이보다 느리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치마를 입었다면 더욱. 힐을 신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가방마저도 여자의 가방은 빠르게 걷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꽤 더운 날씨이지 않은가. 뻘뻘은 당연히 안되고, 송글송글이라 할 지라도 땀이 나는 상황은 미리 막아주는게 도리다. 소개팅이라는 자리는 얼마간 가식적일 수 밖에 없는 자리고, 그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적당히 꾸며주는게 서로를 위한 예의라면 꾸민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보폭과 보속을 맞추자.
어디에서 보니까 남자가 여자의 왼쪽에서 걸어야 한다는 둥, 아니라 오른쪽 반발자국 앞에서 걸어야 한다는 둥, 여자는 인도 쪽에 남자는 차도 쪽에 걸어야 한다는 둥 뭐, 이건 난리법석인데…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많으신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이것까지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어색하게 걷는 자리 바꾸고 할 필요는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며 여자 쪽에서는 '귀엽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습과 또한 어디선가 들은 매너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건 귀엽게 보일 가능성이 있다하더라도 그 정체는 서툼에 다름 아니다. 서툰 모습은 한두번이나 귀엽다. 윤하는 노래했다. '여자 마음을 더 잘 아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 요샌 고딩들도 그렇답니다. 서툰 모습을 일부러 연출하여 귀엽게 보이는 고급 테크닉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그건 파워 유저들의 것이다.
걸음걸이는 보폭과 보속을 맞추어서 어느 방향이든지 편하게 걸으면 된다. 단, 여자가 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지, 왼손에 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건 좋겠다. 여자가 들고 있는 가방의 반대편에서 걷되, 당신의 가방은 여자 쪽 반대편의 손으로 들자. 당신이 들고 있는 토드백을 여자의 정강이에 부딪치고 싶은게 아니라면 말이다. 여자를 차도 쪽으로 걷게 해도 별로 상관은 없단 얘기다. 단 이건 인도 위에서의 이야기다.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풍문여고 돌담길이라던가 하는 걷기 좋은 길 따위가 꼭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운전자들은 막돼먹어서 일방통행길에서 부득불 역주행을 하며 골목길인데도 속도를 높힌다. 그럴 땐 물론 당신이 차도 쪽에서 걸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본은 험한 꼴은 당신이 보고 몸으로 때우는건 당신이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② 에스컬레이터에서와 계단을 올라갈 때.
이건 쉽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면 뭐, 두줄서기 운동도 있더라만 일반적으로 한줄을 서게 된다고 할 때 올라갈 땐 당신이 여자 한칸 뒤에 선다. 물론 딱 붙어 입김을 귀에 불어넣어줄 생각은 안 하는게 좋다. 내려갈 땐 당신이 여자 한칸 앞에 선다.
지하철 계단처럼 넓은 계단은 나란히 올라가든지 마음대로 하시고, 좁은 계단을 올라갈 때는 더 쉽다. 무조건 여자 앞에 선다. 이쁜 까페, 혹은 독특한 음식점의 경우 좁은 계단이거나 가파른 계단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위험하니 만약의 경우 뒤에서 받아줘야 하지 않느냐(… 진짜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봤다)며, 뒤에서 올라가는게 맞다는 사람도 있는데 여자가 치마를 입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어쨌든 무조건 여자 앞에 서는게 맞다. 지하철에서도 그건 마찬가지고, 바지를 입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계단을 올라가며 실룩거리는 엉덩이를 보이고 싶은 여자는 없다. 내려갈 때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럼 응용 문제를 내본다. 만난지 석달 쯤 된 연인 사이다. 데이트를 할 때 여자가 조금 짧은 듯한 치마를 입고 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계단에서 남자의 위치는?
① 손 잡고 나란히 ② 여자 바로 뒤에 ③ 여자 앞에 ④ 나잡아봐라
답은 바로 아래에서 공개한다.
③ 엘리베이터에서.
혹시라도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있다면, 나중에 타고 먼저 내린다. 타든 내리든, 어쨌든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다.
윗 문제의 답은 2번이다.
④ 택시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는 알아서 타시고(소개팅할 때 저 두개를 탈 일은 거의 없지 싶으니), 택시를 탈 때가 문제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사회 생활 많이 해보지 않은 어린 친구들이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무슨 조수석 뒷자리가 상석이라는 둥, 운전석 뒷자리가 상석이라는 둥 말이 많고 조수석 뒷자리 문을 열어준 후 여자를 태우고 자기는 반대편으로 뛰어가서 앉아야 한다는 둥의 말도 있더라.
간단히 정리하자면, 조수석 뒷자리가 상석이 맞다. 직장 상사와 웃어른, 그리고 데이트 할 때의 상대 여자에겐 조수석 뒷자리를 양보하는게 맞다. 물론 문을 열어준 후 여자를 태우고 자기는 반대편으로 뛰어가 문을 열…려고 하면 열리는 택시 봤나? 그냥 오른쪽 문 열고 먼저 낑낑대며 들어가 앉으면 된다. 조수석 뒷자리가 상석이니 뭐니 헷갈릴 것까진 없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의 택시는 왼쪽 문이 잠겨 있고, 좌측 통행인 우리나라는 오른쪽이 인도다. 때문에 운전석 뒷좌석에 앉으면 타고 내릴 때 낑낑대야 한다. 여자가 치마(바지라고 하더라도)를 입고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는 당신이 앉는다. 먼저 내리는 동안 돈 내고 내린 후 문 닫으면 된다.
⑤ 침과 담배
면전에서의 흡연을 용인하는 참을성 있는 비흡연자라고 하더라도 길을 걷다가 자신의 눈에 날려오는 담배 연기에 대해 짜증을 냈던 기억은 (비흡연자) 모두에게 반드시 있다. 같이 길을 걸을 때 담배를 피우는건 자살 행위다. 또한 이건 흡연자들의 상당수가 자유로울 수 없는 혐의인데 아무리 당신이 범생이 이미지를 벗고 싶다 하더라도 길에 침 뱉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야만 한다. 어디였더라. <GQ> 였던가, <에스콰이어> 였던가. 소개팅 하는 내내 길을 걸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찍찍 침을 뱉어대던 남자에 대한 증오 어린 글을 본 적 있다. 길에서 침 뱉는 모습은 그 모습에 따라 지저분하고 역겨워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자 쪽에서는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는 제스추어로 해석할 여지를 통과하여 개인적인 모욕으로까지 비추어질 수 있다. 물론 길에서 담배 피우다가 침 뱉으면서 담배 꽁초까지 버리는 삼연타를 저지른다면 뭐, 어떻게 구제할 길은 없는 것이다.참, 덤으로 쓰레기도 길에 그냥 버리지 말자. 무단 횡단 같은 모습도 가능하면 첫만남에서 보여주지 않는게 좋다.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여자들이 상당히 많을 뿐더러, 대부분 법규 위반이다(…).
8. 흡연
위에선 길에서 담배 피우는 것만 이야기했는데, 까페에서든 음식점에서든 내가 지금까지 이 글들에서 말해왔던게 사실 전혀 생소한 것들이 아닌 것처럼 이 문제에 대한 답도 간단하다. 피우지 않는게 맞다. 물론 예외는 있다. 여자가 흡연자이고, 흡연을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면 흡연해도 되겠냐고 묻고 피운다(그냥 멋대로 피우지 않는게 좋다). 여자가 흡연자이고, 흡연을 한다는걸 몰랐다면 알게 될 때까지 피우지 않는게 당연하고. 이건 반대로 여자가 흡연자이고 남자가 비흡연자인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건 남녀 사이의 매너를 떠나서 당연한 흡연 에티켓이다.
많은 흡연자들이 허락을 구하는 절차조차도 생략하는게 사실이고, 또 흡연자들은 허락을 구하면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나도 흡연자(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고, 비흡연자 앞에서 알량한 허락을 구한 후 담배를 피운 적이 많다만, 사실은 안 피우는게 맞다는걸 나도 안다. 가능하면 안 피우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옳다. 그 자리는 소개팅이다. 소개팅에서 남자가 매너 있답시고 이미 가방에서, 주머니에서 담배랑 라이터 반쯤 꺼내들면서 '담배 좀 피워도 되죠?'('담배 피워도 될까요?' 도 아니다), 라고 물으면 '아뇨. 전 싫은데요' 라고 대답할 여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네. 피우세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거고, 그건 공정치 않다. '아뇨. 전 싫은데요. 안 피우시면 안되나요?' 라고 여자가 똑 부러지게 말하면 호탕하게 웃으면서 '앗, 제가 실례했네요. 죄송합니다' 하며 다시 담배를 집어넣고 마음에 두지 않을 남자는 솔직히 많지 않다. 아마 그 여자 드세거나, 당돌하다고 궁시렁거릴게 뻔하다. 그러니 그냥 담배를 안 피우는게 맞다.
정 못 참겠으면 화장실에 가서든, 잠깐 밖에 나가서 피우고 올 수도 있겠다. 다만 담배를 피우기 위한 목적만으로 일대 일의 만남에서 여자를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은 물론 예의가 아니니 하면 되지 않고, 건물 자체가 금연 건물이고 화장실이 금연 시설이라면 그건 예의가 아닌 법규 문제이니 당연히 금연을 해야 한다. 이런저런 사항에서 다 빠져서 담배를 피울 기회가 있었고, 피우고 오면,
비흡연자는 담배를 피우고 왔다는걸 당연히 알아차린다. 당신이 글리스터나 구강청결제로 입을 행구고 손을 씻고 왔다고 해도 말이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소개팅에 나설 땐 구강청결제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게 당연하고, 흡연 직후에는 손을 씻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담배를 피우고 왔다는 것을 눈치챈 비흡연자에게 담배를 피우고 왔다는 사실을 이용해 '흡연자인 내가 비흡연자인 당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마음을 들게끔 하는 고급 테크닉은 역시 구사하려 하지 말고, 그냥 담배 안 피우는게 속시원한데 흡연자라는게 또 그렇지 않으므로 담배를 안 피우니 아까 먹은 비싼 밥 소화도 안 되고, 자꾸 초조해져서 헛소리만 하는 것 같다라면 몰래 나가서 볼 일 보면서 한대 빨고 돌아오라. 단, 꼭 입을 헹구고, 손을 씻어야 한다는걸 명심하라.
그리고 나도 흡연자지만… 당신이 제임스딘도 아니고, 키아누 리브스는 당연히 아니니 담배 피우는 모습이 고독해 보이지도, 멋있어 보이지도 않는다(의외로 흡연하는 남자들은 이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코에서 담배 연기 나오는 모습은 내가 거울로 봐도 환멸이 느껴지더라.
아, 그리고 여자가 흡연자인게 분명하지 않다면(비흡연자인게 분명하지 않은게 아니라) 까페나 음식점에서는 무조건 비흡연석을 고른다. 그리고 막장 흡연자의 경우, 최소한 휴대용 재떨이를 가지고 있음을 어필할 수 있다면 적어도 실지 회복을 위한 만회의 기회는 남아있는거고 '미인클럽' 의 핸드폰 번호가 프린트된 1회용 라이터는 유머로 반전시킬 수 없다면 보여주지 말자.
9. 그녀와 대화하는 법
…이런건 나도 모른다. 그런게 있을리도 없고, '대체 소개팅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해?' 라고 묻는 남자에게 나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러니 노하우 따위는 없다(기대했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여러 연애학 서적들을 보면 여러가지 충고가 나와 있던데 그건 그 책들을 보시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법에는,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그것도 연애를 전제로 한 만남을 가지고 있는 남녀의 경우라면 누구에게 알려주거나, 가르쳐줄 수 있는 노하우나 대화법 따윈 없다. 이건 '글을 잘 쓰는 방법' 과 완벽하게 같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했던가. 사실은 하나마나한 말에 가깝지만, 하나마나한 말을 또 해보자면 - 책을 많이 읽는게 최고다. 교양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막힘이 없다. 인터넷도 많이 하면 좋다. 2~30대가 정치, 시사, 스포츠, 연예, IT, 세계 관련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를 모르는건 감점이다. 무엇보다 여자랑 이야기를 많이 해봐서 여자의 웃음 포인트, 혹은 재밌어 하는 주제들이나 소재들을 많이 알고 있거나 하는게 중요하다. 이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 수 없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방법' 이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글을 쓸 때 하지 말아야 할 것' 은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것만 피해도 명문, 미문은 몰라도 나쁜 글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개팅에서 그녀와 대화하는 법은 내가 코치해 줄 수 없지만, 그녀와 대화할 때 하지 말아야할 것은 조언해줄 수 있다.
① 스스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점을 이야기의 소재로 올리는 것을 피하라
솔직히 말해서 인간에게는 속물적인 근성이 있다. 당신과 그녀는 천진만난한 소년, 소녀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거나, 자랑하고 다녔던 것이 무언가, 를 자문해봐라.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꽤 속물적인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소개팅 상대에게 어필할만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학벌일 수도 있고, 현재 연봉일 수도 있고,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일 수도 있겠다. 젊은 나이에 빨리 승진했다던지, 외제차를 갖고 있다던지, 혹은 아버지가 땅을 좀 가지고 있다던지, 아는 친구가 연예인이라는 점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던간에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이야기 하지 마라.
여자에게 허영이 있다면, 남자에겐 허세가 있다. 이 허세란 놈의 속성은 참으로 웃긴거여서 한번 허세를 부리기 시작하면 전진은 있어도 후진은 없다. 악셀을 밟을 순 있어도, 브레이크는 없다. 더 나아가 악셀을 밟지 않으면 자기가 뒤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남자는 종종 여자에게 아주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을 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자기가 여자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기 일쑤이고, 자신이 이렇게 이렇게 대단하기 때문에 너에게 내가 말하지 않은 다른 것도 해줄 수 있다는 뉘앙스를 끊임없이 풍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남들이 다 들고 있기 때문에 명품백을 사려고 애를 쓰지만, 남자는 남들이 다 끌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외제차를 끌고 싶어 한다. 이 차이는 아주 흥미롭다.
하지만 흥미로운건 흥미로운거고, 소개팅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지 마라. 스스로 자문했을 때 소개팅에서 연봉 얘기하고, 학벌 자랑하고, 내가 벌써 대리급이라고 자랑할 미친놈이 어딨겠냐고,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남자는 다시 말하지만 허세의 동물이다. 거짓말도 아닌데, 내가 가진 큰 장점을 어필하고 싶어지는건 당연하다. 그게 대놓고 '제가 연봉이 벌써 오천 쯤 됩니다. 왠만한 기업 간부 급이죠. 핫핫핫' 이런건 아닐지라도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남자는 진짜 그런 이야기를 하며, 하고 싶어 한다. 불행히도 나는 정말 대놓고 자랑하는 경우도 실제로 보았고, 여럿 들었다.
소개팅 주선자가 꽃과 사랑을 먹고 사는 지상의 마지막 남은 순수 결정체가 아닌 한 소개팅 주선은 어느 정도 '격'을 맞추려고 든다.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지만, 진실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대학생 시절에 소개팅 얘기 나오면 자연스레 묻게 되는게 생각나실게다. '걔 학교 어디야?',
더 나아가면 '회산 어딘데?', '뭐하는 사람이야?' 이런 질문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선은 아닐지언정 소개팅에서도 어느 정도 당신의 스펙은 이미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다시 한번 '나 이 정도의 사람이야' 라는 느낌을 주려고 눈에 강렬하게 힘주지 마라. 면접 보는 것도 아니고,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도 아니니 당신의 장점과 비전, 투자 가능성을 어필하려 들 것 없다. 꼴 사나워진다.
② 예민하고, 복잡한거 이야기하지 마라.
예민할 수 있는거 처음 만났으면서 묻지 않는게 예의이고, 복잡한 이야기는 주제로 삼지 않는게 현명하다. 나는 여자만 남자한테 '차 있어? 뭔데?' 하고 묻는지 알았더니, 남자도 여자한테 묻더라.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시냐고. 내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도(대통령이면 더?;) 대답해주기 싫을 것 같다. 심지어 엄마 차는 뭐냐고 묻는 인간도 봤다. 어쩌자는거냐.
종교 얘기 주제로 삼지 말고, 대북 정책에 대한 이야기 주제로 삼지 마라. 정치 이야기 하지 말고, 고교 자율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지 마라. 직접 목격한 비참한 소개팅 중 하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왠 처자에게 한 놈팽이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30분 동안 강의한 것이었다. 내가 본 최고의 소개팅 명장면 10위 안에 꼽힌다. 어쨌든 묻지 말고, 이야기 하지 말고(다만 종교적 지향이 다른 부부가 많이 힘들듯이 정치적 지향이 다른 커플도 많은 힘겨움을 겪는다는걸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이공대생을 비하하는건 아닌데 화공과인 대학생과 소개팅을 한 어떤 여자는 피부 관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계면활성제의 성분 이야기로 빠져서 뭐가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를 이야기를 듣다가 기분이 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남자는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더 큰 목소리로 자기가 아는 이야기로 주제를 돌리려고 애를 쓰거나, 몰라도 아는 척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자기 위주가 아니면 용납 못하는 성향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여자는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나빠지고, 또 굳이 나쁘지 않아도 나쁘다는 티를 내다가 결국 나빠지고야 마는데 그 역시 자기에게 집중해 주지 않으면 용납 못하는 성향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이건 알아두면 좋은 일인데, 여자는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는 남자에게 모욕감마저 느낀다.
여기서의 교훈은 복잡한 전공 얘기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이다. 당신은 잘 알지만, 상대는 어차피 자기 전공 아니면 잘 모른다. 유추해보자면, 상대가 모를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좋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자는 허세의 동물이고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을 파고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대가 모르고, 나는 아는 분야의 이야기는 오히려 신나게 하는 경향이 있고, 그게 강의로 이어지기 일쑤다. 차라리 여자에게 자외선 차단제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와라. 당신의 삶과 피부에 보탬 된다.
③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첫사랑 이야기 하지 마라
꼭 있다. 내가 장담하는데 여자들에게 소개팅 진상 베스트 10 을 꼽으라 하면 꼭 나올거다. 첫사랑 이야기하는 인간, 조금 더 심하면 내 첫사랑하고 닮았다는 말도 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있다. 내가 볼 때는 하나도 안 닮았다. 그러니까 그 얘기 하지 마라. 정말 닮았다면 더더욱 하지 마라. 설령 도플갱어가 나와도 하지 말고 그냥 다음날 죽어라. 꼭 소개팅 때가 아니더라도 남자는 왜 여자한테 작업할 때 왜 꼭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민망해 죽겠다.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첫사랑은 세상 사람 다 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류의 완전 눈물 없인 진짜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여자가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한 첫사랑 이야기는 그냥 고이 가슴 속에 간직하라. '미워도 다시 한번' 류의 눈물 없인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하면 더더욱 가슴 속에 묻어둬라. 나중에 영화 시나리오로 고쳐서 공모하던지 말던지 그건 마음대로 하고. 그리고 여자가 꼬치꼬치 캐물어도 역시 그냥 고이 가슴 속에 간직하라. 첫사랑 이야기 하는 남자는 자기 얘기 담배 한대 물고 눈 지그시 감으면서 '자, 어서 감동해봐. 눈물 콧물 다 빼봐' 라는 투로 지루하게 늘어놓고서는 꼭 여자한테도 첫사랑 이야기하라고 조른다. 마지못해 대강 대강 ~뭐~ 이랬어요, 하고 있으면 안 듣고 있는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인데,
여성 편력 자랑하지 마라. 진짜 꼭 있다. 자기가 여자를 오십명 쯤 후려냈다는 이야기를 왜 소개팅 와서 하고 있나. 그만큼 능숙한 남자이니 여자 마음을 잘 알 것 같아서 그대에게 눈 반짝이며 '오오, 고수셨군요+_+ 서투른 애송이에게 소녀의 마음을 드릴 수 없사오니 이십년간 고이 간직해온 소녀의 순정을 공자님께 바칩니다' 라고 해줄거라고 생각하는진 모르겠는데 타인의 연애기가 재밌다지만, 그건 바람 나고, 싸우고, 지지고 난리법썩을 떠는 이야기가 재밌던지 친구나 지인의 몸살 나게 알콩달콩한 모습이 이쁜게 재밌는거지 소개팅 상대가 옛날에 어떤 여자랑 만났었는지를 대체 어느 여자가 그걸 좋아할 것 같나. 그런데 왜 이런 남자 꼭 있는지 모르겠다.
진짜 고수는 서투른 듯 능숙하고, 능숙한 듯 서투른 척 하는게 진짜 고수다. 은근히 여자 마음도 잘 알고, 여러가지 하는걸 보면 여자 제법 만나봤을 것 같은데 결정적인데서 서투른 모습을 한번(계속 보이면 안된다!) 보일 때 그 모습이 귀엽고, 안아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여자 좀 만나봤는데' 하는 티를 팍팍 내는건 밥맛일 뿐이다.
또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는데, 이건 연애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소개팅에서도 그런 남자 꼭 있다. 과거 묻지 마라. 몇명하고 사귀어봤는지, 소개팅은 몇번이나 해봤는지는 대체 왜 물어보냐. 대관절 소개팅도 순결해야 하는건지,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 뭘 생각하는건지 모르겠다.
④ 반말하지 마라.
무례한건 당연한건데, 그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소개팅은 흔히 남자랑 여자가 동갑내기이거나 여자가 몇살 어리다. 꼭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지만, 아무튼 대개는 그렇다. 그런데 이야기 좀 하다 보면 남자가 은근슬쩍 말을 놓는다. 그것도 뭐라고 하기 힘들게 존대말 꼭꼭 하다가 한두번씩 반말을 섞어가면서. 그러다가 별 무반응이면, 완전히 말을 놓는다. 그리고 꼭 그런다. '오빠가 말이야.', '오빠가 있잖니', '오빠가 해줄께', '오빠잖아'.
'오빠 믿지?' 로 진행될게 뻔한 저 오빠 시리즈는 하도 귀에 익어 나도 몇번 무의식 중에 쓴 적이 있는데,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진다.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내 생각에는 오빠라는 호칭이 너무 다정하고 좋아서 남자도 누군가를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은게 아닐까 싶다. 아무도 부를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를 스스로가 오빠라고 부르는게지. 쩝-_-;
아무튼 그거 하지 마라. AI 걸린 닭스럽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편한게 좋답시고 어, 동갑이네. 우리 그럼 말 편하게 하자, 하하, 호호, 히히.
…오늘도 또 좋은 친구를 만들었다. 에구구.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소개팅한 당일 말 놓고 야자 트는거 왠만하면 말리고 싶다. 말 놓는다고 말빨 없는 자신이 갑자기 넘쳐나는 개그 소울의 영적 감화에 몸부림치게 되는거 아니다. 존대하면서도 얼마든지 분위기 좋을 수 있고, 그게 좋은거다. 반말도 어색하려면 충분히 어색하다. 물론 여자 쪽이라면 다르다. 여자는 당신에게 말 놓자고 제안한 후 말 편하게 하다가도 당신을 구워삶을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 남자가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다. 소개팅은 좀 어색하고, 불편한게 정상이다. 그리고 편한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건 첫만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좀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여자를 능숙하게 이끄는 모습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느낌(편한 것과 편안한 느낌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분간할 수 있는 당신은 하산하라) 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편안하게 보살피는 것과 편하게(다시 말해 만만하게) 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⑤ 욕하지 마라
세상을 조금 모르고 살아오신 여자 분이라면, 남자들끼리만 만났을 때 입에서 나오는 말에 반 정도가 욕이라는 것이 놀라울지도 모른다. 친한 친구일수록 더하다. 미친새끼 지랄하네. 꼴갑하지 말고 얼른 튀어와. 늦으면 죽여버린다. 이런 대화를 여자끼리 나눈다면 절교하자는 이야기일까? 물론 여자도 욕을 한다. 국문과라는 과 특성상(ㅠㅠ) 나보다 입이 건 여자 동무들을 좀 알고 있긴 하고, 나이 어린 중딩, 고딩 애들도 입에서 년자가 빠지질 않더라. 문제는 남자는 초딩이건 중딩이건, 대딩이건, 직딩이건 입에 좆을 물고 산다는거다.
욕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욘 없을 것 같다. 소개팅에서 욕할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버릇이라는거 무서운 일이다. 소개팅 상대에게 미친년, 개같은년 하며 욕할 일이야 당연히 없을거고, 없어야겠지만 그놈의 입에 물린 좆은 쉽사리 안 빠져나간다. 나이살 먹고 존나 존나 하고 있으면 진짜 머리 없어 보인다. 안타까운 소개팅 일화 하나를 전하자면 어떤 녀석이 약속에 십분 정도 늦었단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으니 여자 앞에 막상 섰을 때 숨이 차서 아무 말도 못하겠더란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헥헥대며 말을 하는데... '아, 진짜 죄송해요. 제가 헥헥. 진짜 안 늦게 출발했는데 차가, 차가... 씨발, 존나 막혀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⑥ 해결책을 제시하지 마라
여자는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혹은 좀 더 친해지기 위해, 혹은 자기 호감을 표시하기 위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것은 하나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스킬임과 동시에 심지어 연애학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소개팅에서도 이런 여자의 테크닉은 간혹 사용되곤 하는데, 물론 이런 고민들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고, 듣는 상대도 부담스럽지 않고, 말하면서도 '에휴. 모야, 난 이게. 흑흑' 하면서 장난처럼 말할 수 있는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의 고민을 무조건 자기가 해결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응? 그래? 그렇다면 말이지. '오빠'가 보기에 그건 이런거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돼. 이제 됐지? 그럼 여자는 황당해진다. 소개팅 뿐만 아니라, 모든 연애에서 이러한 양상은 쉽게 발견되는데 남자의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여자는 이런 면에서 남자를 손바닥 위에 가지고 놀기도 하지만 가끔 짜증나기도 하며, 남자의 이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는 그냥 노상 짜증이 날 뿐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해한다. 그게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이 역시 자기 과시와 자기 존재 가치 증명의 욕구의 발로일 뿐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아는 해결책은 남도 알고, 소개팅 그녀도 안다. 소개팅 하는 날 처음 만나 상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건 오히려 실례다. 소개팅 그녀가 들었을 때 부담스러운 고민을 꺼내놓는다면, 그것도 물론 실례지만 - 그런 경우가 아니라 그냥 가벼운 신세 한탄이라면(그리고 사실 대부분 그렇고),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냥 '어머어머', '우와, 그랬군요', '와. 진짜 대단해요', '아, 그건 아닌거 같애요. 이쁘신데요 뭘.', '제가 볼 땐 진짜 여성스러우신데' 정도로 맞장구를 적당히 쳐주면 그만이고, 더 나아가서 자기가 알고 있는 관련 에피소드를 짤막하게 이야기하면서 서로 하하, 호호 웃고 넘기면 그만이다. 고민 상담해주러 나간거 아니니까, 뭔가 해결해주려 애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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