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애프터 신청은 꼭 해야 하나요?
몇몇 분들의 내 글에 대한 코멘트를 살펴 보았는데, 몇몇 분들, 그리고 말씀은 안 하시지만 이 글을 읽는 상당히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것이 있다. 이 글에서 '하라', '하지 말라' 고 한 많은 것들이 '그녀가 마음에 들었을 때' 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 자체가 소개팅에서 소위 '대어를 잡기 위해' 행해야 하는 매너라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으신 분이 많으신 듯 하다.
오해이시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을 때' 만 이 정도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배려나 매너가 가능하고,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일단 우리만큼이나 이 소개팅에 기대를 건 그녀들의 허탈한 심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상대가 우리의 기준 - 이를테면 얼굴은 청순가련동안미소녀, 가슴 사이즈는 …음. 네모토 하루미 급은 아니더라도 아오이 소라 급은 되야지 않겠남? - 에 훨씬 못 미친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그렇게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는 매너와 배려는 부담스럽고, 가식적인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억지스럽고, 불편한 것. 누차 말하지만, 아니 함만 못한 비호감이다. 이 글의 시리즈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글로 늘어놓으니 길고, 보통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꼭 소개팅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 뿐이다. 여자 하나 만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남자가 불쌍하다, 신경 쓸게 너무 많다,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동굴에서 혼자 움마움마~ 하면서 고기 구워먹고 가죽 벗겨 아랫도리 가리면서 면도가 모야? 하면서 살게 아니라면 누굴 만나도 코털 정리 안 하고, 옷차림새 신경 안 쓰고 살건 아니지 않은가. 원래 볼 일이 있어 만나자고 한 사람이 어디 갈지도 안내하고, 밥도 사는 법이 아니던가? 첫 데이트, 그리고 연애에 공식적으로 돌입하기 전에는 볼 일이 있는 사람을 남자로 상정하자는 것 뿐이다. 설령 남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어지간히 친한 십년지기 이런 친구를 만나지 않는 한 사실은 집 밖에 나가는 순간 신경 쓸 일은 생긴다. 이 정도가 피곤한가. 축하한다. 히키코모리의 재질이 있으시다.
각설하자면, 나는 애프터 신청 또한 기본적인 매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논란의 여지가 많겠다. 심지어는 여자 분들 중에서도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다. 그렇지만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녀가 정말 진상을 떨거나, 그 날의 만남이 기분이 나쁠 정도가 아니였다면. 그저 무난한 정도에 그치더라도 반드시 한번은 더 만나보는게 옳다. 그렇지 않고 한번 만난 것으로 그녀를 밀쳐내버린다면, 그건 스스로에 대한 오만이다. 또한 그녀에 대한 무례다. 게다가 소개팅 주선자에 대한 실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말 다시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도 애프터 신청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어쩌겠는가. 우리가 마조히스트가 아닌 바에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녀를 다시 만나는 고통을 겪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연락처는 반드시 묻는다. 그건 소개팅이라는 형식에 대한 예의다. 연락처조차 묻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의미를 알고 행하는거라면 우린 정말 나쁜거다. 혹은 모르고 하는거라면 우린 앞으로도 연애 못 할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말해 가장 기초적인 여자의 심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여자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피해의식'과 '애정결핍' 조금 거칠지만, 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만약 소개팅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가 연락처를 묻지 않는다면, 당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할지 몰라도 그녀는 속이 상하기 시작한다. 그건 당신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별로 상관없다. '날 무시하는건가', 혹은 '날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 두가지 걱정은 여자의 뇌구조를 그린다면 어느 구석엔가 반드시 존재하는 문장이다.
이런 여자의 심리를 맞춰주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진지하게 연락처를 물으면 된다.
그녀가 연락처를 가르쳐주면, 꼭 조심스럽게 적거나 핸드폰에 잘 입력해둔다. 아무렇게나 대충 적어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마음에 든다면, 그래서 혹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진지하게 들었다면 통화 버튼을 눌러 잘 걸리는지 확인하는 제스추어도 좋다. 틀리지 않게 적었나 확인하자는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그녀와 한번 더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설령 주선자에게 전해 들어 이미 알고 있다거나 하더라도, '전화번호 이거 맞으시죠?' 혹은 면전에서 전화를 걸어보고 '번호 맞나 확인해봤어요' 라고 말한다면 그녀의 기분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 물론 그녀가 우리가 싫어 가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면…… (먼산).
혹시라도 그녀가 명함을 준다면, 받자마자 그냥 지갑에 찔러넣지 않는다. 이건 사실 사회에서도 중요한 예의인데, 거래처 사람을 대하는게 아니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계속 확인할 필요야 없겠지만, 받아 들고 나서는 꼭 읽어보는 제스추어를 취한다. 가끔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명함 나왔다고 명함을 주곤 하는데, 그들이 내 명함을 고이 간직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지만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대충 구겨넣는걸 보면 기분이 상한다. 대개의 사람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명함을 주면 일단은 우리도 명함 지갑을 뒤적이자. 명함이 없다면. 음. 음. 음. 뭐, 솔직히 말하고 양해를 구하면 되는거고.
(지적이 있어서 추가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연락처를 묻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제가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길게 설명했지만 여자 분들이 그걸 신경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소개팅 자리만큼은 무사히 마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락처조차 물어보지 않는 것은 면전에서 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건 여러모로 안 좋은 선택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적하신 분의 말씀도 납득이 가고, 일리가 있습니다. 저도 남자의 연락하기로 한 말을 약속으로 생각하고,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 역시 알고 있습니다. 원래 여기에는 다른 부분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나름의 구성상의 문제로 뒤로 뺀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연락처를 물었고, 연락하기로 했으면 어쨌든 연락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을 만났든, 두번을 만났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연락을 할 것처럼 이야기해놓고 연락을 하지 않는 식으로 소개팅을 최종 마무리 짓는 것은 절대 옳지 않습니다. 제가 글에서 적은, 연락처를 재차 확인한다던가 하는 제스추어는 설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연락처를 물었을 때 사용하라고 쓴 제스추어겠습니까? 지적해주신 분께서 제가 미처 쓰지 않은 부분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요즘 시국이 하도 이래서 '오해' 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기 좀 뭐합니다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17. 첫번째 데이트 후에는 어떻게 연락을 하나요?
'나 걔 맘에 드는데 애프터는 어떻게 해, 형?', 혹은 '오빠, 저번에 소개팅해서 만난 남자가 자꾸 전화만 하고 만나자는 말을 안 해. 왜 이래?' 이런 질문 우린 너무 많이 하고, 많이 들었다.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면 명쾌한데, 자신의 일이라면 갑자기 두눈 감고, 두귀 닫고, 냄새도 안 맡으려 든다. 그래서 무슨 논문이냐는 말까지 들어가며 이렇게 세세하게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인데,
소개팅 당일에는 연락처를 묻는 것만으로 족하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들은 종종 소개팅 당일날 끝장을 보려고 한다. 아무리 그녀가 so hot 해서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백골이 진토되어 드래곤 슬레이브 맞은 용족처럼 될 것 같은 영감이 절대무적 프리온경처럼 뇌리에 구멍을 빵빵 뚫어주신다 하더라도, 그게 바로 문제다. 순간의 욕망에 자신을 놓지 말자.
그날 분위기가 괜찮다면,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다시 연락드릴께요' 여유 있는 이 한마디. 이 한마디가 여자로 하여금, 은근히 우리의 연락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다.
① 문자나 전화는 너무 빈번히.
우리 중에는 참 지지리도 연애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연애의 기술이 나쁘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연애에 못 돌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를 안 만나거나, 혹은 어딘가 하자; 가 있느냐 하면 여자를 만나고자 하는 의욕 충만하며, 나름 훤칠하고, 스스로 능력도 있다 자부(…)하고, 그냥 멀쩡한 청년인 경우도 많다. 그럼 왜 연애를 못할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경우에서 말하고 싶은 이유는 그 놈의 나름의 연애관이;
어쩌다가 소개팅을 잘 하고 돌아와서도 그 놈의 느낌 좋고, 필 충만할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그 놈의 연애관이 항상 문제였다. 여자는 한번에 무너뜨려야 한다나? 시간이 걸리면 친구 지역에 갇힌다나? 어이, 그거 <프렌즈> 에서 조이가 한 말 표절한거 말은 안 했지만, 다 안다고. -_-; 하지만 그건 몇개월의 이야기지. 당신은 삼일 안에 쇼부 치려 들자나!
우리 중에는 문자를 하루에 열개씩 보내고,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사람이 진짜 있다. 그것도 어떤 식이던가. 밤 12시에 전화하고. 자기 점심 시간은 12시부터라고, 1시부터 점심시간인 여자한테 12시 30분에 전화하는 사람 분명히 있다. 지금 이순간 우린 남의 일이라며 혀를 차지만, 우린 다 안다. 그게 다 우리가 한 짓이니까!!!
문자는 어떤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핸드폰에 와 있는 미확인수신메시지 6 통.
'모해요?'
'왜답문안해요?'
'헉스무시당해따!!ㅠㅠ'
'저기바쁘세요?'
'답문좀해요'
'모가그리바빠서답문할시간도없어요?
…이러지 맙시다(문자라고 성의도 없어. ㅠ.ㅠ)
전화는 하루에 한번 정도만 하든지, 어제 잠깐이라도 전화 통화를 했다면 오늘은 꾹 참는다던지 하는 것도 좋다. 문자는 퇴근 시간이라던가, 학생이라면 집에 갈 듯한 시간 즈음에 맞춰서 보내는게 좋다. 의외로 남자들은 아침에 문자를 보내려고 든다. 아마 '내 문자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라는 나름의 의미 부여인 것 같은데,
아침에 바쁘다. 지하철 정신없다. 버스 막힌다. 졸리고, 배고프고, 춥다(요샌 덥다). 핸드폰까지 삑삑거리게 할 필요 없다. 짜증나니까 아침에 문자 보내지 않는게 좋다. 또한 너무 안달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안달하지 말자. 영어 단어 외우듯이 반드시 외워야만할 금언이다. 안달하지 말자. 안달하지 말자. 안달하지 말자. 안달하지 말자. 안달하지 말자.
② 우린 용량이 좀 더 크니까
우린 뇌용량이 2048kbyte 밖에 없지 않다. 그리고 즐초딩도 아니다. 문자 보낼 때 맞춤법은 맞추자. 정말 맞춤법 틀린 문자 보면 그녀 마음 심란해진다. 심란한 그녀 마음 생각하면 나도 심란하다. 의외로 맞춤법에 예민한 여자가 많다. 그건 신뢰감의 문제다. 여자가 남자를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가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건 '경계심' 이다. 그리고 여자는 처음 보는 남자에 대한 '무서움' 을 마음 한구석에 잘 숨겨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남자에 대한 호감의 조건으로 스타일리쉬함이나 개성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함을 더 우선적으로 꼽는다. 그건 신뢰감 때문이다. 당연히 맞춤법은 신뢰감에 도움이 된다. 또한 여자가 남자를 고르는 기준 중 중요한게 있다.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여자에게 물으면 거의 이건 꼭 나온다. '존경할 수 있는 남자'.
'문안/무난', '연예/연애', '어의/어이', 의/에', '어떡해/어떻해', '돼/되', '가르키다/가르치다', '틀리다/다르다', '낳다/낫다', '사려되다/사료되다', '안하다/않하다' 등등.
이런 맞춤법 틀리는 남자를 존경하긴 어렵다. 나도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맞춤법에 크게 자신있다, 이런건 아니지만 저런 맞춤법은 솔직히 교양을 의심할만하지 않은가?
'도데채그사람은왜궂이그랬데요ㅋㅋㅋ?
하는 문자에 마음이 짜하게 식은 어떤 소개팅녀의 사연을 소개한다. 다시 말해 이모티콘도 자제하는게 좋다는 것이다. ㅋㅋㅋ, ㅎㅎㅎ 등도 그렇다. 좋은 느낌인 것과 친한 것과는 다르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 ㅋㅋㅋ, ㅎㅎㅎ, ㅇㅇ 등으로 문자를 받으면 불쾌할 사람들 많다. 이건 정말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과다한 이모티콘은 우리를 경박하게 보이게 할 것이다. ㅋㅋㅋ, ㅎㅎㅎ 를 쓰진 않더라도 말끝마다 ㅋ, ㅎ 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
'밥 먹었어요?ㅋ', '퇴근 언제해요?ㅋ', '다음주말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ㅋ',
문자를 진지하게, 혹은 정말 관심이 있어서 한다기보다는 ㅋ, ㅎ 만 붙여도 그냥 심심해서 문자를 보내본다는 인상을 풍긴다. 혹은 상대방을 조금 깔보는 듯 하기도 하다. 어쨌든 너무 경박해 보인다. 남자로서 너무 진지하다거나, 너무 과묵하다거나 하는 이미지도 그다지 좋진 않지만, 경박하다는 이미지만큼 최악의 이미지도 없다.
어디서,
■■ [빼빼로]
■■
■■ [널 위해~]
■■ [준비했어]
□□ [받아줘*^^*]
이런 이모티콘 긁어다 네이트온에서 보내지 말자. 이런 이모티콘은 특히 30대 넘으신 분들이 20대 중후반의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소개팅을 한 후에 젊어보이겠다고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저씨인게 더 두드러질 뿐이다. 아, 우울해.
이모티콘을 문자 메시지에 섞는 이유는 분위기를 좀 가볍게 만들고 싶어서인데 메시지에 같이 섞어 보낼만한 이모티콘은 '^^', ':)' 정도 뿐이지, 지금 단계에서 다른 이모티콘을 마구 쓰는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문자는 가능하면 제한 글자수에 가득 채워 보내는게 좋다. 그녀에게 너무 짧은 메시지를 보낸다면, 그녀는 우리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긴 있는건지 의심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70자 정도 되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우리는 30자를 보낸다면 그녀는 기분이 상한다.
③ 대중교통 안에서 전화통화는...
무슨 공익 광고처럼 되어 버렸는데, 아무래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서, 당연하다고 쓰는 당연한 글이다 보니까 공익 광고 같은 당연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를 고려하라는 것인데, 만약 업무적으로 만난 사이라면, 그것도 자기가 아쉬운 처지라면 '전화 가능하세요?' 하고 항상 물어보고 생각할텐데, 이상하게 남녀 관계에서는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연애 초기에서는 남자가 을, 여자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
만약 전화를 했는데, 그녀가 지하철 안이라던가 버스 안이라면 일단 전화를 끊자. 전화를 끊고 나중에 통화하자. 그녀는 우리에 대한 예의 때문에 미처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지하철 안에서 당황할 공산이 크다. 이런 남녀 관계에서는, 초기의 친밀하지도 못할 때는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마찬가진데 자기가 조금 곤란하더라도 그 곤란함을 확실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건 '그냥 그 사람 보고 확실히 이야기해!' 라고 충고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알아서 그런걸 배려해주면 참 센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건 지하철이나 버스 안은 시끄럽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가 "예?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세요', '잘 안 들려서요' 라는 말을 한두번 이상 한다면 일단 끊고, 조용할 때 다시 하는게 낫다. 그녀도 짜증나고, 우리라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는게 좋겠는가. 전화가 간단한 한두마디를 하고 끊을게 아니라면 나중에 조용할 때 다시 하는게 낫다. 그래야 그녀도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
④ 약속은 적어도, 최소한 사흘 전에.
사흘은 최소한이다. 구체적인 약속은 적어도, 최소한 사흘 전에 잡아야 한다. 그게 예의다. 이를테면 두리뭉실하게 주말 쯤에 만나기로 했다고 치자. 그런데 금요일까지 아무 말 없다가, 금요일 저녁 때나 '내일 어디서 볼까요?' 하는 남자. 분명히 우리 중에 있다. 그리고 그러지 말자는 얘기다.
약속은 적어도 화요일, 수요일 쯤에는 확정을 하자. 그리고 대강 '종로에서 보죠', '대학로에서 만나요' 하는 식으로 약속을 잡지 말자. '대학로 4번 출구 앞에서 만나요' 하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약속을 정하자. 두번째 데이트 약속을 대충, 아무렇게나 만난다는 식의 인식을 주게 된다.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계획이 있고, 정말 만나고 싶어한다는 기분을 안겨주…지는 못해도, 소중하게 대접받는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자. 그게 서로 기분이 좋다.
불행히도 핸드폰이 보급된 이후 약속을 대충 잡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 을이기에 갑을 만나야 하는 사람, 자기에게 뭔가 이득을 줄만한 사람과의 약속이면 그렇게 잡지 않을텐데 친구는 만만한걸까. 친구는 가까우니 편하게 대하는거지, 막 대하는게 아니다. 남자는 전반적으로 동성 친구끼리 조금 막 대하는 경향이 있고, 그걸 진정한 우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경쟁이 특히 치열한 구도의 일부로 살면서 그 긴장감을 풀어낼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그거야 어쨌든간에 동성 친구에게 익숙한 남자는 소개팅 등 이성을 업무 상황이 아닌, '사교적으로' 만날 때에도 동성 친구를 대하듯 대할 때가 있다. 버릇처럼 말이다. 약속 같은게 그런 문제인데,
원래 약속이라는건 상대방이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거나, 나름대로 일정 관리를 할 수 있고 그날의 약속을 위해 몸과 마음의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조차 주어야 한다. 그 시간이 정말 최소한으로 잡아서 사흘이다.
직장인에게도 그렇지만, 학생에게도 주말은 황금같은 시간이다. 친구랑 만나서 수다도 떨어야 하고, 한주간 쇼핑도 해야 하고, 영화도 보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다. 하다못해 집에서 뒹굴뒹굴 낮잠만 자더라도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금요일 밤에나 전화해서 내일 어차피 약속 없을거 뻔히 아니까, 나랑 술이나 먹자, 는 식으로 상대방의 기분과 일정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면 안 된다.
사나흘 전에는 약속을 잡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부터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게 뭐냐면, 다음 카테고리를 보아주시기 바란다.
18. 그래서 대체 애프터 신청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① 두번째 만남은 명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첫 데이트를 마친 그날부터 두번째 데이트에 대한 계획에 들어가야 한다. 이젠 슬슬 둘이서 뭘 할지, 조금 특별한 계획을 잡는 것도 좋다. 그것은 다시 한번 만날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즉 다시 말해 데이트에 명분을 주는 것이다.
첫번째야 소개 받으려고 만났다 치고, 두번째는 무슨 명분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자는 말을 틀거 아닌가. '밥이나 먹죠' <-- …한 분기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냐. 그냥 단순 심플하게 '이번 주말에 볼까요? <-- 멋 없다.
위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여자는 '가벼운 여자', 혹은 '쉬운 여자' 로 취급당할까 하는 두려움을 많든, 적든 대개는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 두번째 데이트를 할 때는 여자가 '남자가 마음에 들어서 승낙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 아, 물론 요즘은 그런 가부장적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도 권력이라는게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데이트에도 명분의 허울과 자존심에게 줄 변명거리가 어느 정도 필요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줌으로써 오히려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명분을 줄 것인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에게 숨겨진 연애 세포가 드디어 스위치 온, 파워 온 하며 하품 하며 기지개를 피워냈다면 우리도 그녀의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 정도는 잡아내지 않았을까?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에 뭐가 개봉한다더라.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요샌 통 못 봤다더라, 이런 정보가 무척 중요하게 작용하는게 두번째 만남이다.
가끔 첫번째 만남에서부터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좋지 않은 우울한 첫 데이트가 될 것이다. 조금 상관없는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하겠는데, 내 인생 첫 소개팅 주선은 고3 때 있었다. 수능을 막 보고 난 직후였는데, 나와 여자 쪽 주선자, 소개팅 받는 남녀, 이렇게 넷이 만났다. 막 고3의 터널을 벗어나고 뭘 알겠는가. 어색하고, 쑥스러워 그들은 주선자들이 빠져나가는걸 잡았고, 별 준비 없이 그냥 일단 만나고 본 우리 넷은 뭘 할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서는 당시 화제작 박신양, 최진실 주연 <편지>가 상영하고 있었다. 이 영화, 그냥 간단히 말하면 마구 울리는 최루성 영화인데, 그 넷 중에 나만 완전 대성통곡을 하고 나왔다. 눈물콧물, 귀에서도 물이 나오는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내 몸에 그렇게 많은 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 날 소개팅이 얼마나 우울했을까? 아, 식은땀이 난다. ;
그렇지만 두번째 데이트에서는 영화가 허용된다. 다시 얘기하면 영화나 공연 같은걸 보면서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거나, 대화할거리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건 좋은 일이다. 그냥 요즘 유행하는 '아이언맨' 이런 영화를 선택한다면 몰라도 조금 독특한 영화를 선택한다면 그녀의 성격까지도 일부 짐작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스피드 레이서> 보셨어요? 비가 그렇게 멋있게 나온다면서요. 비 좋아하세요? 저는 노력하는 모습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잘했다고 하니까 왠지 보고 싶어지는데, 어떠세요? 괜찮으신 날 말씀해주시면 제가 예매할께요.'
가볍게 승락하기에도 부담없는 데이트 신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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