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학개론] 진심, 그리고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
오늘의 [연애학개론]은 이른바 '진심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남자의 고백
여기 A라는 남자와 C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A와 C에게는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호감이 있는 B와 D라는 이성이 있습니다.
A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B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진심으로 널 많이 좋아해. 그러니 내 마음을 받아줘. 너랑 정식으로 사귀고 싶어."
반면 C는 좋아하는 이성인 D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에게 호감이 있어. 하지만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앞으로 사귀어 가면서 알아갈 기회를 서로에게 주자."
둘 다 결론은 '당신과 사귀고 싶다.' 이지만 그러한 결론을 제안하는 모양새는 분명 다릅니다.
진심(眞心)이란 무엇입니까
흔히 '진심을 담은 고백' 하면 진지하고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의미로 곧잘 통용되곤 합니다. 약간은 가벼운 마음 혹은 아직 심각하게 발전하지 못한 얕은 호감은 진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진심(眞心)이란 무엇입니까. 뜨거운 사랑만이 진심이고 가벼운 호감은 진심이 아닌가요? 진심(眞心)이란 말 그대로 '진짜 마음'. 지금 이 순간, 더할 것도 더 뺄 것도 없는 솔직하고 진실된 나의 속마음이죠.
결국 제가 생각하는 '진심을 담은 고백'이란, 그것이 무겁든 가볍든, 뜨겁든 뜨겁지 않든, 자신의 현재 마음을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담백하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적어도 이것이 진짜, 진심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심에 대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뜨거운 사랑만을 고백하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아직은 설익은, 혹은 아직 깊지 않은 얕은 호감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이다.]
과장된 진정성과 솔직담백한 인정
물론 서두에 소개한 두 남자 A와 C 둘다, 그 마음 자체는 자신의 진심일 것입니다. 그러니 'A식의 진심은 잘못되었고 C식의 진심만이 진짜다.' 라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흔히들 진심을 담은 고백하면 A식 고백을 떠올리지만, C식의 고백도 얼마든지 진심을 담은 고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죠.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둘 중 더 신뢰가 가고 믿을 수 있는 고백을 꼽으라면 A보다는 오히려 C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왜냐하면 A와 B, C와 D는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이죠.
결국 C와 같은 솔직한 고백이 진심이 아닐 확률은 낮지만, A와 같은 고백은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진심이 아닐 확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심이 아니라기 보다는, 진심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이죠. 그리하여 이제 막 연애 초반, 누군가를 만나기 시작한 그 시점에서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한번쯤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라고 말이죠.
막말로 서로 얼마나 만나봤고,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사랑 운운, 진심 운운합니까. 제가 여자라면 진지하게 뜨거운 진심을 들이미는 A라는 남자보다, 아직은 무겁지 않은 자신의 현재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앞으로의 연애 온도의 상승을 희망하는 남자 C를 더 신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A든 C든 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죠. 그들이 아는 거라곤 고작 겉으로 드러나는 내 외모와, 예의라는 가면에 가려진 나의 선별된 성격, 그리고 내 스스로 만들어내어 남들에게 내보이는 대외적 이미지 정도이죠. 그들은 진짜 나를 모릅니다. 나도 진짜 그남자들의 맨얼굴을 모르구요. 그런 차원에서 저라면 A보다는 C라는 남자에게 더 신뢰감을 느끼고 오히려 더 진심을 느낄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남자는 적어도 사기는 안 치겠구나.' 혹은 '좋아한다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마음이 식었다고 갑자기 훌쩍 떠나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결국 A에겐 알 수 없는 부담감이, C에게는 일종의 기대감이 생겨나겠죠. 이렇듯 연애 초기, 상대방을 향한 호기심이 기대감이나 부담감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이지 한 순간입니다.
순정을 가장한 연애 폭력
물론 진지하고 뜨거운 사랑, 혹은 깊은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모두 거짓이라거나 과장되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긴 시간 동안 서로 간에 많은 교감을 주고 받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우리들의 그 뜨거운 감정이 얼마든지 신뢰할만한 진심이고 사랑일 수 있죠. 이 사실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방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라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려선 곤란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기만이죠. 결국 제가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애 초기 단계에서의 무거운 고백, 이른바 자기 감정에만 푹 빠지고 치우친 과도한 진심 타령입니다. 막말로 막상 그렇게 진심을 담은(?) 고백으로 사귀어놓고 막상 몇 달 만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합니까? 연애라는 게 착각했다고 쉽게 한판 무를 수 있는 장기나 바둑도 아니고 말이죠.
결국 '뭐가 어떻게 되든 일단 그사람의 마음을 얻고 보자.' 혹은 '어떻게든 그사람과 사귀고 보자.'는 목적에 매몰된 이런 식의 과장된 진심팔이가 과연, 하룻밤의 원나잇스탠드를 위한 온갖 감언이설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격식을 차리고, 조금 더 오래 만나고, 또 조금 더 진심을 가미(?)했다는 측면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러니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족하고 설익은 진심을 깊고 뜨거운 것처럼 과장시키는 성급한 행동은 곤란합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아낀다면 그래선 안 되죠. 이건 말 그대로 '순정을 가장한 연애 폭력'이니까요.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는 지금 현재의 우리 마음의 온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직 덜 데워진 자신의 마음, 이제 막 피어나는 작은 호감에 불과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봐요.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입증하고 있습니까
결국 연애 초기 우리가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입증해야할 것은 진심이 아닌 '매력'입니다. 사실 진심 타령은 남자들만 하는 게 아닙니다. 여자들 또한 항상 남자들에게 '너의 진심을 보여달라'며 진심 타령을 하죠. 그리고 이러한 진심 프레임에 말려든 남자들이 자신의 진심을 입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구요. 하지만 위에서 구구절절히 얘기한대로 이건 남자 쪽에서 헛심 쓰고 있는 겁니다. 진심을 보여달라던 여자에게 남자는 나름의 진심을 열심히 보여주며 갖은 노력을 하지만 정작 반응은 시큰둥한 경우가 많죠. 진심을 보이라는 여자의 신호를 있는 그대로만,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판 자체를 잘못 짠 결과랄까요. 사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진심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수식어 하나가 빠졌죠. 그냥 진심이 아닌, '매력을 바탕으로 한' 진심.
아무리 내가 뜨겁고 단단한 진심을 가지고 있어도 오로지 진심만으로 모든 연애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심만으로 연애가 쉽게 해결된다면 지금 이곳 피지알에 솔로는 아무도 없겠죠. 솔로들은 희귀한 존재일 것이고 이 세상은 온통 커플 천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후.. 잠깐 눈물 좀 닦고..;;
결국 '과장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진심과 고유한 매력의 어필은 투트랙으로 함께 가야합니다.
우리가 입증해야할 것은 진심이 아닌 매력
생각해보면, 사실 제가 여자라도 남자의 진심보다는 매력을 더 믿겠습니다. 말 뿐인 진심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설령 그 순간에는 진실이라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언제든 쉽게 사그라들 수 있는 유동성이 있지만, 멋진 외모나 유머러스한 성격, 부유한 경제력, 정서적 공감대, 젠틀한 매너 등 그 사람이 가진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은 쉽게 휘발되거나 사라질 확률이 낮기 때문이죠.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가 입증해야할 것은 진심보다는 매력입니다. 그녀를 향한 당신의 판짜기는 진심 싸움이 아닌 매력 싸움이 되어야한다는 얘기이죠.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또한 연애 초반 맘에 드는 이성과의 만남을 이어갈 때,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구구절절히 어필하지 마시고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매력있는 사람인지를 어필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상대의 마음을 흔들 수 있고, 그래야 한 번의 만남이라도 더 가질 수 있습니다.
진심, 그리고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
하지만 이러한 매력 싸움, 혹은 매력 입증이라는 게 말이 쉽지, 따지고 보면 가장 어려운 문제이죠. 결국 단순한 진심이 아닌 '매력'을 입증하라는 난감하고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은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도입부의 링크글에서 뺑덕어멈님이 말씀하신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지금 한번 스스로에게 자문해봅시다. '나는 그 사람과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말이죠.
결국 이러한 용기를 위해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이른바 '관계에 대한 예의'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잘난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는 거죠. 그리하여 어떤 상황, 어떤 감정, 어떻게 기울어진 관계이든지간에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내가 관계에 대한 예의를 중시여기며 내 자신을 아낄 줄 안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 못지않게 내 자신이 가치있음을 스스로가 마음 속 깊이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생각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우린 그 사람과의 관계를 언제든 쉽게 끝내기가 힘듭니다. 관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상대방의 태도를 자꾸만 용인하고, 나보다 상대방을 더 소중하고 가치있게 여긴다면 쉽사리 판을 깨고 나올 용기가 생기기 어렵죠. 이런 경우, 판돈을 다 잃더라도 끝까지 가보고자 하는 오기와 희망 고문만이 남기 쉽습니다. <미생> 9화에 이런 식의 표현이 나옵니다.
[허겁지겁 선수(先手)를 쫓다보면 곤마(困馬)를 면치 못한다.]
결국 바둑에서 상대방의 판짜기와 선수(先手)에 휘말려 헤매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대처는 판 자체를 뒤엎거나 깨뜨리는 과감함이죠.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헤어짐과 거절의 두려움에 급급해 자신만의 중요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끌려다니기만 한다면 매력의 입증은 커녕, 관계 자체가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자신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 딱히 내세울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만이라도 가져봅시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연애는 크게 달라 질 수 있다고 봐요.
결국 연애에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만이 용기는 아닙니다.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에게만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용기도 자연스레 주어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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