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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연애학개론

[연애학개론] 나 자신에게 뻑이 가라

[연애학개론] 나 자신에게 뻑이 가라



오랜만에 쓰는 [연애학개론]입니다. 
오늘은 짤막한 고해성사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솔직해져 봅시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제 [연애학개론]을 아껴주고 애독해주시는 피지알의 몇몇 소수의 연애 초보 독자분들이 제 글을 통해 지금 당장 눈 앞의 그녀와의 연애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네, 사실 거의 0으로 수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가능성이 없진 않죠. 아주 운 좋게 고백이 성공하고 행복한 연애 생활에 돌입할 순 있으나, 그건 말 그대로 ‘얻어 걸린 것’일 뿐, 제 [연애학개론] 덕분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적어도 ‘연애 쌩초보’ 분들에겐 그렇습니다. 아, 물론 어느 정도의 도움은 분명히 되었을 것은 분명하나,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그냥 어쩌다 보니 제 글을 읽던 시기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시기가 우연히 겹쳤을 확률이 더 큽니다. 제 글 몇 편을 통해 오늘 당장 연애에 성공할 수 있는 중후한 내공이 생긴다면 지금 pgr 자유게시판은 연애 성공의 역사를 간증하는 글로 넘쳐나야 맞겠죠. 하지만 현실은? 

오늘도 연애관련 글을 읽으며 쓰린 속을 달랠 뿐 달라지는 건 별로 없습니다.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 것도 이젠 지겨울 뿐이죠.





연애 칼럼은 희망 고문


다른 연애 칼럼들을 언급할 것도 없이, 제 [연애학개론]은 이러한 희망 고문을 먹고 자랍니다. 즉, 오늘도 제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연애 초보인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말고 힘내세요^^ 파이팅!’ 
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며 연애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킵니다. 물론 저 또한 여러분의 연애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제 글을 기다리는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양질의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것은 맞습니다. 나름 진심을 담아 정말 열심히 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 글을 읽는 독자 분들 가운데 이러한 제 기대에 부응하며 연애에 성공하는 이들은 극히 극소수일 뿐이며 이들도 사실은, 연애성공의 문턱에서 그 어느 한 걸음이 모자라서, 이른바 화룡점정의 한수가 모라자서 방황하던 연애 유망주들이 대부분일 뿐, 나머지 대부분의 독자들의 지질학자 생활은 변하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변하지 않는 연애의 진리 두가지가 있죠. 이른바, ‘케바케’와 ‘될놈될’. 

사실 이거, 맞습니다. 즉, 냉정하게 말해 연애 칼럼은 될 듯한 놈들을 더 잘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안될 놈들을 구원해주는 환상의 바이블이 아니란 얘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현실의 공포를 일깨워드리진 않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현실에서의 연애의 높은 벽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고 그 공포를 누구보다 가깝게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확인사살을 할 필요는 없죠. 그럼 제 글이 인기 없어질테니까요. 결국, 제[연애학개론]의 원동력은 이렇게 오늘도 연애를 글로 배우는 많은 분들의 희망 고문을 먹이로 하여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현실이 그래요. 

물론 이 것은 비단 제 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대다수의 연애 칼럼들이 ‘당신도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점만을 강조할 뿐, ‘솔직히 이렇게 해도 넌 안돼.’ 라고 얘기하진 않죠. 그러면 장사가 안 될테니까요. 

그래서 다시 한번 솔직해져 봅니다. 초기 연애의 성공은 이른바, ‘외모+스타일+말빨’의 삼위일체 속에서 피어납니다. 다른 거 필요 없어요. 이 공식이 연애 성공을 위한 아우토반이자 KTX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냉정하게도, 현실이 그렇습니다. 외모도 그저 그런데다가 스타일까지 별로고 말빨 따윈 국말아 먹은 지 오래인 당신이 연애에 성공할 확률은 죄송하지만 0으로 수렴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까지 오면, 그 누군가는 묻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일단 우리는, 연애 칼럼을 읽으며 연애에 대한 환상을 꽃 피우고 스스로 잘 될거라 막연하게 자위하며 잠자리에 들기 이전에, 냉정한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내 주변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객관적 직시. 출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자는 거죠. 그리하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연애에 성공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디 ‘외모+스타일+말빨’이 삼위일체를 갖추어서 성공하던가요? 아뇨, 오히려 그 반대가 더 많습니다. 저중에 일부가 부족하더라도 연애에 성공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죠. 즉, 저게 전부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핵심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사실, ‘외모+스타일+말빨’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자신감’에 있습니다. 여자라는 동물은 남자의 외모, 스타일, 말빨 이 어느 한 가지에 혹하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남자가 풍기는 ‘자신감’에 더 깊이 매혹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남자의 자신감 유-무 만큼은 기똥차게 알아차리는 게 여자들의 동물적 감각이죠. 결국 앞에서 언급한 삼위일체의 구멍을 메워주는 핵심이 바로 ‘자신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훨씬 더 어려워지죠. ‘외모나 스타일이 돼야 자신감도 생기는 거 아냐?’, ‘매너나 말빨도 없는데 어떻게 자신감이 생기냐’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자신감의 획득’이라는 게 말이 쉬울 뿐,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 제일 갖고 싶되 제일 갖기 어려운 것이니까요. 





자신감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것


그런데 중요한 건 ‘외모, 스타일, 말빨’ 등이 자신감을 상승시켜주는 필요 조건인 건 맞지만,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해법의 실마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물론 이 삼위일체의 모든 요소가 엉망이면 치명적이지만, 이 중에 몇 가지가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아, 물론 저도 자신감 획득을 위한 교과서적인 조언을 해드릴 순 있습니다. 운동으로 건강한 심신을 단련하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말끔하고 깔끔한 스타일로 스스로를 가꾸며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고.. 등등, 말은 쉽죠. 근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자신감이라는 놈이 어디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게임 아이템 득템하듯 간단하게 획득이 된답니까. 오히려 어떻게 자신감을 획득할까 고민하고 pgr 질게에 자문을 구하는 그 자체가 이미 스스로가 자신감 없는 사람임을 인증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자신감 획득,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획득된 자신감은 그러한 토양이 망가지면(살이 찐다거나, 스타일이 뒤쳐지거나 하면) 금방 또 상실될 위기에 처합니다.

결국, 접근 방식과 시각을 바꿔보자는 거죠. 
일단은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자신감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피어나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결국, 자신감의 획득 이전에, 자존감의 형성이 우선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문제는 자신감이 아닌 자존감의 부재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감정을 의미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알며, 스스로의 매력뿐만 아니라 초라하고 부족한 면까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끌어안을 줄 아는 그런 성숙한 태도이기도 한거죠. 이런 사람들은 내가 소중한만큼 상대방이 소중한 줄도 알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사랑할 줄 알죠. 내가 소중한 줄은 모르고 상대방만 소중한 줄 알고 쩔쩔매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모른채 상대에게 애걸복걸하며 모든 걸 바친채 거룩한 성은이 내려지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감 이전에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연애 칼럼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두가지 시각을 비교해볼까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없고 자신의 본연의 매력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어필해야하는지 그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오로지 상대방의 반응에 의존합니다. 그렇다보니, 연애칼럼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그대로 써먹기만 하죠. 상대방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이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지나치게 상대방의 반응에 귀 기울입니다. 좀 잘되는 듯 싶으면, ‘어라, 이게 먹히네? 호오~’하며 신기해하다가도 다시 좀 안 된다 싶으면, ‘에구, 역시.. 내가 그렇지, 뭐.’ 하며 쉽게 꼬리를 내립니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매력이 무엇인지 모르므로 무엇을 어필해야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무기는 오직 책이나 칼럼에서 읽은, 정형화된 방법들 뿐인 거죠. 쉽게 말해 ‘이게 털리면’ 더 이상 남는 게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도 모른채, 상대방의 식사 기호에만 매달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만 열중합니다. 그러다보니 연애 실패의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는 생각밖엔 안 드는 거죠. 깊은 열패감은 수시로 내 몸을 휘감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못나서.’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정말로 내가 못나서, 단순히 내가 못나서 그런 거 맞나요?
진정으로 못난 모습은, 이렇게 자학하며 스스로의 탓만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아닐런지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자존감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스스로의 매력을 인지할 줄 압니다. 이들에게 연애 칼럼이란 단순한 에스컬레이터에 불과합니다.

쉽게 말해, 나란 사람의 진정한 매력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그 곳을 향해 상대방이 오르기에는 너무가 가파른 계단들이 형성돼 있습니다. 이른바 부족한 외모 혹은 평범한 스타일, 혹은 서툰 말빨과 매너 등등이 이러한 걸림돌이겠지요. 사실 나에게 상대방을 한방에 뻑가게 만들,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면 그것들은 저 높은 곳에서도 환하게 광채를 보일 것이고 상대방은 충분히, 자신의 땀과 노력을 지불하고 힘든 계단을 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내 고유한 매력들은 저 위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고민합니다. 이 계단을 오를지, 말지. 

그때 상대방으로 하여금 한번 올라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바로 자신감과 자존감입니다. 후회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테니 꼭 한번 올라와보라고 씩 웃으며 그녀에게 손짓하는 요소인 거죠.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망설입니다. 이 남자의 뭘 믿고 나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나 고민인거죠.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 칼럼에서 배운 소소한 매너와 대화의 기법, 데이트 방법 등을 통해 상대방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리드하는 거죠.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편안하게 올라오게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을 제시해주는 것이 연애 칼럼들이구요. 





연애 칼럼은 거들 뿐


결국, 말 그대로입니다. 결국 ‘연애칼럼은 거들 뿐.’

내가 나의 매력에 빠져들지 못한다면, 연애칼럼을 아무리 독파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결국 나의 진정한 매력이자 무기는 나 자신이니까요. 처음에는 내 부족한 외모나 스타일로 인해 상대방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런 경험은 늘상 있어왔으니까요. 오히려 그 상대방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 할수록, 나의 매력은 더욱 발산되리라는 점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매력과 단점을 찾아내야죠. 객관적 직시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조급함을 버릴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성급하게 삼위일체를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하는 것보다, 그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자존감이 우선이라는 것이에요. 말 그대로 자존감 위에 자신감을 얹는 것입니다. 나의 매력은 충분하나, 보여줄 통로가 비좁고 부족하므로 단지 그 통로를 넓히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이를 돕는 것이 연애 스킬이라고 생각되어질 때, 당신의 '연애 칼럼 읽기'는 한없이 가볍고 자유로워지며 즐거워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렇게 자기 자신을 믿고 존중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쉽게 털리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털려도 괜찮죠.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란 사람의 진정한 매력을 알아보지 못한 상대에게도 절반 정도는 있는 것이니까요. 나도 안타깝지만, 그런 상대도 안타까운 거죠. 그렇다보니 열패감도 자연스럽게, 남들보다 쉽게 극복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의 위엄이죠. 





'연애'라는 유리병 속에서 탈출하기


결국 문제는 이렇습니다. 그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나만의 고유한 매력은 너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데다가 나조차도 깜박깜박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부족한 나의 단점들은 너무 크게만 부각되어 보입니다. 그것이 연애를 결정짓는 전부일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드는 거죠. 그러다보니 결국 우리들의 고유한 매력을 상대방에게 어필하기도 전에, 우리들의 부족한 자신감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사지로 내모는 격이 됩니다. 결국, 연애라는 유리병 속에 갇힌 우리들의 가치 기준이 너무 '상대방이 바라보는 나'에 편중되어 있다는 거죠. 결국 이러한 가치의 기준을 깨뜨리고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의 해법은, 남이 바라보는 내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멋진 내가 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즉, 그 가치 기준을 상대방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돌려놓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만의 고유한 가치와 매력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겠구요. 그 가치와 매력은 나의 평소 성격과 일상 생활에서, 혹은 나의 취미나 전공에서, 혹은 내 직업이나 친구 관계에서, 혹은 평소 읽는 책이나 동아리 모임 속에서 등등..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공간과 순간에 숨어있습니다. 누구 하나 매력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혹은 그동안 무시해왔던 나만의 멋진 모습들을 찾아서 이끌어내고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초라하고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끌어안는 과정인 것이구요. 그래야만이 변화할 수 있고, 자아도취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사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연애의 성공이고 자시고 간에, 그딴 건 그 이후에나 논하자는 얘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과정들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이른바 삼위일체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죠. 





나 자신에게 뻑이 가라


결국, 나 자신에게 뻑이 가야 상대방도 나에게 뻑이 갑니다. 자아도취에 불과하다구요? 약간의 자아도취면 어떻습니까. 그 요란한 빈수레를 차곡 차곡 채울만한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조금씩 갖추어가는 것도 나름 재밌는 여정입니다. 꼭 무언가를 획득하고 나서, 꼭 무언가를 얻은 이후에, 그제서야 그걸 밑천 삼아 자신감을 획득하려고만 하지 마시고 일단은 먼저 스스로를 아끼고,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믿는데서 시작해보자구요. 자학하는 소심한 지질학자보다는, 적당한 나르시시스트가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자존감만큼 섹시한 매력은 없으니까요. 

기억하세요, 연애 성공의 종결자들은 따뜻하고 자애로운 휴머니스트보다도, 재수없지만 섹시한 나르시시스트가 더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