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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연애학개론

[연애학개론] 밀당의 기본

[연애학개론] 밀당의 기본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들의 연애의 영원한 숙제이자 숙적인 '밀고당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저도 밀고당기기를 참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은 밀고당기기의 고급스킬이 아닌, 말그대로 기본 중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밀고당기기 하수가 말하는 밀당의 기본이랄까요. 그래도 뭐든지간에 기본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그럼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우리들의 '밀당'이 실패하는 이유


여기 한 복학생이 있습니다.

#1.[어느새 복학한지도 1년이 다되어가며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던 중, 귀엽고 예쁜 과 후배와 친해지며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된 남학생이 있습니다. 복학 학번과 겹치는 학번이라 같이 전공 수업도 듣고, 발표 준비도 같이 하고 그녀의 해맑은 인사를 받을 때마다 하루하루가 설레고 행복합니다. 이 남자는 그녀에게 잘보이기 위해 알게 모르게 여러가지 경로로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죠. 

발표 준비를 하면서 그녀를 위해 조원 모두에게 음료수를 쏘기도 하고, 그녀가 어려워하는 전공과목은 선배의 위엄을 살려 열심히 조언도 해주고 예전에 발표했던 발표 자료와 전공서적도 빌려주고, 여러 구실로 자연스레 밥도 사주고. 물론 뚜렷한 고백은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나름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했다고 생각하며 조금씩 더해가는 친밀감에 뿌듯해하던 어느 날 이 남자는 고민에 빠집니다. 특별한 변화가 없이 이어지는 무난하고 시큰둥한 그녀의 반응에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잘해주기만 했나?' 라는 의구심이 든거죠. '뭔가 쉬운 존재로 비춰져선 곤란하다'는 위기의식과 '약간의 긴장감을 던져줄 시기가 됐다'는 판단하에 남자는 말로만 듣던 '밀고당기기 신공'을 시전하게 됩니다. 

우선 그동안 잘해주었던 호의를 뚝 끊고, 또 나름 날짜와 시간까지 재가며 꾸준하게 보내던 문자도 끊어버린채로 그녀의 반응을 살핍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는 평소처럼 해맑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합니다. 한번도 아니고 마주칠 때마다 말이죠. 그녀는 멀쩡한데 나만 괜히 뻘쭘해하며 어색하게 인사받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하루, 이틀, 삼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타들어가고 초초해지는 건 바로 남자 쪽. 
'내가 이대로 잊혀지는 건 아니겠지?', 
'금방 마음이 식는, 줏대도 없는 남자라고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별별 생각들이 다 머리 속을 휘젓습니다. 결국 남자는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채로 다시 휴대폰 문자 메시지 창을 엽니다. 그러곤 떨리는 마음으로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가며 문자 메시지를 조심스레 전송합니다.

"에구, 내가 그동안 과제가 넘 바빠서 연락도 잘 못했다야^^; 뭐해?" 

그랬더니 바로 이어지는 그녀의 반응,

"아, 공남 봐요흐흐 저도 요즘 동아리 연습하느라 바빴어요크크"

그의 연락따위(?)야 아무 상관 없다는듯, 명랑하고 쾌할하게 답장해주는 그녀. 
남자에게 두려운 설레임의 시간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너무나 빠른 초스피드 답장에 남자는 잠시 정신이 멍하고 허무해집니다.;;
결국 그녀는 이남자의 '밀당'은 커녕 이 남자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결국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린 그의 밀고당기기.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저는 우리들의 밀당이 이렇게 허무하고 허망하게 실패하는 이유를 두가지 원인에서 찾고자 합니다. 바로 '각인의 부재'와 '편중된 밀기'.





밀당의 기본1 - 각인


우선 전제부터 잡고 가죠. 위에 제시한 사례의 첫번째 문제점은, 상황을 해석하는 전제부터 틀렸다는데 있습니다. 밀고당기기의 전제는 '호감'에서 출발합니다. 나를 향한 상대방의 호감이죠. 즉, 밀고당기기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상대방의 호감을 이용하여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연애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나에 대해 긴장할 이유도 없고 내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쓰일 까닭도 없지요. 한마디로 우리들의 밀당이 실패하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나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니까요.


결국 밀고당기기를 하기 위해선 적어도 상대방이 나에게 어느정도의 호감이나 관심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전제가 틀린 수학문제는 풀어볼 필요가 없듯, 호감이나 관심이 결여된 밀당이 실패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밀당은 이미 사귀기 시작한, 연애가 시작된 연인 사이에 사용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아직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상대에게 고백을 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용되는 밀당은 패착의 지름길이죠. 상대방의 호감이나 관심도 얻지 못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밀고 무엇을 당기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백을 위한 모든 밀당'이 반드시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예외도 있지요. 이런 예외의 경우, 밀당의 성공의 밑바탕에는 '각인'이 존재합니다. 즉, 상대방의 호감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했을 지라도 적어도 상대방에게 나란 존재를 '각인' 시키는데는 성공한거죠. 상대방의 호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상대방에게 내 존재가 자꾸 눈에 밟히고 거슬리게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각인이죠. 나를 자꾸 신경쓰게 만들고 내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각인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당기기'입니다.





밀당의 기본2 - 당기기


사실 밀고당기기의 본질은 간단합니다. 적절한 호의를 상대방에게 꾸준히 베풀다가 상대방이 그 호의에 익숙해져 갈때쯤, 그 빈도를 점차 줄이고 어느 순간 완전히 끊습니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유발한 후, 일정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호의를 베푸는 것. 이것이 밀고당기기의 기본적인 모습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밀고당기기의 기본이 밀기가 아닌 '당기기'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그냥 당기기가 아닌 '확실한 당기기'. 즉, 간단하게 말해서 일단 상대방에게 잘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호의를 베풀려면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베풀고 호감을 표시하려면 제대로 표시해야죠. 결국 우리들의 밀당이 실패하는 두번째 이유는, '어중간한 당기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당기지도 않았으면서 밀기에만 급급하단 얘기인데요. 뭘 당겼다고 자꾸 밀어내려고만 하나요?


우리 솔직해져봅시다. 좋아하는 여자를 향한 이른바 우리들의 호의란 어떻습니까? 우리 남자들은 당당하게 호감을 표시하고 노골적으로 호의를 베푸는데 아주 인색합니다. 뭔가 쑥쓰럽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잘해주려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호의를 베풀 때마다 적절한 구실을 붙이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우리들이 그래요. 


그녀와 같이 밥이라도 한번 먹을라치면, 

"아 맞다, 지난 기말고사 때 너한테 서브노트 빌리면서 내가 언제 밥한번 사준다고 했잖아. 기억나지? 점심 안 먹었음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지난번에 우리조 발표 준비하면서 니가 내 피피티도 손봐주고 발표자료도 많이 도와줬잖아. 그덕에 발표도 무사히 끝냈는데 선배가 밥이라도 한번 사야지 안그래? 뭐 먹고싶은 거 없어?"

밥 한번 먹는데 뭐이리 이유가 많고 구실이 많나요.
그냥 "밥 사주고 싶다." 혹은 "너랑 같이 밥 먹고 싶다." 이 한마디면 될 걸 말이죠. 이렇듯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 마음을 안들키고 호의를 베풀기 위해 안달입니다. 우리가 무슨 키다리 아저씨도 아닌데 말이죠.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우리가 배운 연애 메뉴얼의 1번은 언제나 '자연스러움'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자연스러움 강박증'에 걸린 자연주의자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자 현주소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편한 후배 짐가방은 번쩍 번쩍 들어주면서, 내가 맘에 드는 그녀의 짐가방은 
'지금 들어줄까, 말까..?'
'뭐라고 말을 붙이면서 들어줄까..?'
'괜히 들어준다고 했다가 거절당하면 뻘줌할텐데..'
'지금 들어주면 내가 좋아하는 거 너무 티날까..?'
등등 머릿속으로 쉴새없이 이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우리이지요.


자연스러움? 물론 좋죠. 연애에 있어 자연스러운 것만큼 좋은 게 어딨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밀고당기기'를 전제로한 '당기기'에서는 약간의 부자연스러움도 필요합니다. 당당하고 솔직하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상대방에게 숙제를 던져주어야죠. 
"저 오빠가 나한테 갑자기 왜 이러지?", "혹시 나한테 관심있나?" 
라며 신경쓰이게, 자꾸 눈에 밟히게 만들어야지, 
"아 저번에 그것땜에 밥사주는 거구나.^^냠냠!" 
마냥 이렇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단 얘기입니다. 우리가 무슨 밥셔틀도 아니고 말이죠.;; 
밀고당기기의 가장 큰 매력은 항상 내게 숙제를 던져주던 상대방에게 반대로 내가 숙제를 던져줄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좀 들키면 어떻습니까. 그녀가 나의 존재에 무관심한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나란 존재를 어필하고 그녀가 나란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신경쓰게 만드는 것이 백번 낫죠. 밀더라도 '확실히 당기고 난 이후'에 밀일입니다. 그래야 밀기가 제대로 탄력을 받죠. 어설프게 당기면 그만큼 밀기의 효과도 미미한 법이니까요. 

기억하세요. 밀당의 핵심은 밀기가 아닌 당기기에 있습니다.





밀당의 최고 비법은 밀당을 하지 않는 것?


사실 지금까지 제가 밀당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댔지만 이러한 내용을 숙지하고 있음에도 우리들이 또 한번 밀당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조급함에 있습니다. 밀고당기기의 과정에서 조급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요원합니다. 스스로의 마음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마음을 컨트롤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되죠. 이런 사람은 상대방에게 긴장감을 심어주려 했다가 오히려 스스로가 조바심에 빠지는 자승자박의 결과에 빠지기가 십상입니다.


반대로 우리들의 마음을 하루에도 몇번씩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들의 밀고당기기가 성공적인 이유는, 의외로 그녀들이 밀고당기기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 때 '밀당의 고수다'라고 생각되어지는 그녀도 사실은, 나의 행동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밀당을 하지않는 것이 최고의 밀당 비법이랄까요. 밀고당기기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것이 밀당의 태생적인 한계라면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밀당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예 밀당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앙념과 진심


사실 밀고당기기는 음식으로 치면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양념에 불과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양념으로 인해 음식의 맛이 더해지는 것처럼 밀당 또한 우리의 연애에 있어서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연애 자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고 관계가 더욱 오래도록 지탱되어지도록 돕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수 있죠. 


하지만 양념은 결국 양념일 뿐입니다. 양념이 메인디쉬가 될 순 없죠. 아무리 최고의 양념이더라도 음식 자체가 상하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아무리 화려한 밀고당기기 기술을 가졌어도, 상대방과 나 사이에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화려한 양념이 없이도 멋진 요리는 탄생할 수 있지만 메인재료 없이 양념 하나만으로는 그 어떤 제대로 된 요리도 만들어낼 수가 없죠. 적성에도 안맞고 자신도 없는, 어설픈 밀고당기기에 집착하다가 사랑스런 그녀를 놓치기 보다는, 진솔함과 당당함으로 승부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래서 더욱 기대해봅니다. 
뜨거운 진심이야말로 어설픈 밀당을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