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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연애학개론

[연애학개론] 모면의 심리학

[연애학개론] 모면의 심리학







남자의 연애? 모면의 역사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A는 B와 사귀고 싶습니다. B도 A가 싫지 않죠. 그래서 이 둘은 데이트를 하고 만남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남의 과정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시각차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B에게 이러한 만남의 과정은 말 그대로 연애의 한 페이지, 그 자체로 즐거운 연애의 한 과정이자 흐름의 일부이지만 A는 조금 다르죠. 

남자 A에게 이 만남의 순간들은 본격적인 연애의 과정이 아닌 일종의 '미션', 혹은 '통과의례'에 가깝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저 사람과 사귀기 위한 선행단계이자 일종의 프롤로그인 거죠. 아직 본편은 시작도 안했습니다. 사실 가능만 하다면, 답답하고 지지부진한 이 단계를 얼른 스킵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하지만 참고 참으며, 구도자의 마음으로 묵묵히(?) 연애 수행의 길을 걸을 뿐. 즐겁지만 동시에 괴로운 것이 바로 이 연애 초반의 과정이죠. 

반면 B에게 필요한 것은 스토리와 감정선입니다. 이 남자와 사귀는 것도 좋지만, 이 남자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흔들리고, 알 듯 모를 듯 서로간의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 순간의 설렘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감정선이 중요하죠. 결국 사귐의 여부 못지않게 나와 그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느냐의 과정 또한 중요하고 바로 이러한 것들이 주변 친구들에게 얘기해줄 자신만의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지점에서부터 차이가 생겨난다고 봐요. 여자들에게 추억이란 만끽해야할 순간이고 남자들에게 추억이란 만들어줘야 할 선물인 것처럼 말이죠. 





결과와 과정의 줄다리기


더불어 스킨십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지난 주말에 여친이랑 1박2일로 바닷가 놀러갔다 왔잖아. 근데 거기 분위기가 완전.." 이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남자에게 친구는 단호하게 묻습니다.
"됐고. 그래서, 잤어? 안잤어-_-?"

결국 이러한 스킨십이나 원나잇 스탠드에 대한 남녀의 시각차도 앞에서 말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식에 의해 달라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감정선의 이어짐을 중시여기는 여자들에게, 원나잇 스탠드란 기-승-전이 사라진 뜬금없는 '결'이라면, 남자들의 입장에선 기-승-전이 압축된 깔끔한 '결'인 것이죠.   

(물론 모든 남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국 연애에 있어서 대체로 남자들이 중시 여기는 것은 결과이며, 여자들이 중시 여기는 것은 결과 못지않은 과정입니다. 그러니 남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사귀느냐, 못 사귀느냐', '손을 잡느냐, 못 잡느냐', '화해했느냐, 화해하지 않았느냐'의 문제라면, 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귀었느냐', '어떻게 손을 잡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화해했느냐'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들에겐 중요하죠.





우리는 얼마나 '모면'에 의존해 왔나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사귐의 과정이나 스킨십의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본격적인 연인 사이의 연애 과정에서 둘 사이에 트러블이 생겼을 때, 이른바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네 남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킬이 바로 '모면'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연인 사이, 남녀 간의 소소한 트러블이 생겼을 때, 남자들은 무엇보다도 지금의 이 불편한 상황 자체가 피곤하고 싫습니다. 별 거 아닌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심각하게 트러블을 일으키고 싸우는 것 자체가 골치 아픈 일인 거죠. 그래서 얼른 이 불편한 상황을 정리하고 화해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사과가 '쉽게' 나오는 거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이제 그만 싸우자."

라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어떻게든 이 골치 아픈 상황을 모면하고 평화를 되찾아오는 것이 급선무니까요. 하지만 이럴수록 여자는 더 화가 납니다. 그녀가 바란 것은 일방적이고 성의없는 사과가 아닌, 문제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화해의 과정이니까요. 그러니 여자 입장에선 이런 말이 툭툭 나옵니다.

"뭐가 미안한데? 말해봐, 니가 뭘 잘못했는데?"

이러한 지루한 공방의 반복. 우리가 흔히 겪거나 보게 되는 연애 다툼의 익숙한 한 장면입니다.





모면의 결과 - 맨얼굴로의 대면


물론 이러한 남자들의 회피와 모면의 스킬을 통해 그 순간의 다툼과 트러블만큼은 어찌어찌 잠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할 뿐, 피와 고름을 짜내며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의 과정은 아니죠.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더 이상 봉합할 수 없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게 마련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렇습니다. 회피와 모면의 스킬을 주로 사용하는 남자치고 자신이 진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남자가 드물다는 점이죠. 결국 이러한 모면을 통한 트러블의 봉합은 나와 그녀, 둘 다에게 일종의 앙금과 흉터로 남아버립니다. 그러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남자는 더욱 더 피로해지죠. 그리고 이러한 피로감이 감당하기 힘든 만큼 쌓여버리게 되면, 결국 폭발하게 되는 것이구요.

남자도 짜증나고 답답한 거죠. 그 동안 남자친구로서 오냐오냐(?), 항상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해주고 여러가지로 배려해주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는데, 그동안의 그러한 노력은 알아주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섭섭해하는 여자친구가 답답하고 오히려 서운합니다. 즉, 지금까지 내가 100을 양보하고 배려해왔는데, 고작 1을 가지고 서운해하며 나에게 쏘아대는 그녀의 비논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거죠. 그래서 참다 참다 못한 남자도 화를 냅니다. 

"내가 그만하자고 했지?!"

라는 멘트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폭발이죠. 이것이 회피와 모면으로 연애 수명을 부지하던 남자들의 대체적인 말로(?)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여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이제까지 남자가 보여 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과격하고 배려심 없는 낯선 얼굴 앞에, 여자는 이 남자가 변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더 서러워지죠. 그리하여 이 지점에서 여자는 더욱 가열차게 화를 내거나 눈물을 쏟아냅니다.





대화가 필요해


하지만 사실 남자가 변한 건 없습니다. 단지 원래의 본성(?)이 드러난 것일 뿐. 남자 입장에선 오히려 그동안 많이 참은 겁니다. 남자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건 여자의 착각이죠. 따지고 보면 남자는 그냥 남자기 때문에, 혹은 남친이라서 그동안 져주고 배려해 온 것뿐입니다. 그러니 둘 다, 어느 한쪽을 이기적이라며 혹은 변했다며 일방적으로 탓할 문제는 아닌 것이죠. 

어쨌든 이렇게 서로간의 맨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이별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지게 마련입니다.

결국 순간의 봉합을 위한 회피와 모면의 시도는 이렇듯 둘 사이의 문제를 더욱 더 키우기 일쑤이고 나중에 가서는 어떻게 손대기도 힘든 이별의 암덩어리로 자라나곤 합니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회피와 감쪽같은 모면이라고 해도 이른바 단순한 '모면'만으로는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요. 
결국은 용기 있는 직면과 끊임없는 대화만이 해답입니다.





사과보다 중요한 것은 고민의 흔적


사실 따지고 보면, '모면'이라는 것은 상대방보다는 나를 위한 스킬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이야 어찌됐든, 지금 이 순간 내가 좀 편해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다는 거죠.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함부로 사과하지 마세요.

오히려 치열하게 대화하며 싸우세요. 너무 감정의 골이 깊어져 대화가 어렵다면 편지라도 쓰길 바랍니다. 결국 이러한 대화와 편지를 통한 소통의 과정에서 우리가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사과가 아닌, 관계에 대한 '고민의 흔적'입니다. 그녀는 사과받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길 바라는 것이니까요.

"내가 정말 미안해, 진짜 잘못했어.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게."
라며 뭐가 미안한지, 뭘 잘못했는지, 다음부터 뭘 안 그럴 것인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사과하기 보다는

"생각해보니, 내 이런 모습들 때문에 그동안 니가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겠다."
라는, 관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사과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점, 혹은 내 입장에서 아쉬운 점 또한 솔직하게 털어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치열한 대화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GG나 백기투항이 아닌, 서로간의 끊임없는 소규모 교전을 통해 상대방의 빌드와 체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니까요.





치열한 고민과 공감만이 관계에 대한 예의


사실 이 글을 쓰는 제가 대표적인 모면의 아이콘(?)이라는 점은 함정-_-입니다만..
그래도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말씀드릴 건 말씀드려야겠죠.

"우리는 몇 년을 만났어도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어." 
라며 자랑하는 커플은 둘 중 하나의 케이스입니다. 서로의 성향이 너무나 찰떡궁합인 영혼의 동반자, 이른바 소울 메이트 커플이거나, 반대로 둘 중 어느 한명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경우이죠. 그리고 소울 메이트를 만나기 힘든 현실을 놓고 볼 때 대부분의 경우는, 전자보다는 후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안 싸운다는 게 무조건 자랑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적당히 싸우는 커플이 건강한 커플이라는 사실은 일종의 상식에 가깝죠.


그러니 정말로 사랑한다면 쉽게, 함부로 사과하지 마세요.
치열하게 고민해주시고 마주한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해주세요. 
이것이,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연애의 과정에서 서로가 외로워지지 않게 만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테니까요.